📅 2026년 01월 18일 07시 01분 발행
한낮의 골목 끝, 작은 세탁소에 서 있었습니다. 천장 레일을 따라 옷걸이가 작은 금속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였고, 비닐이 스치며 잔잔한 마찰음을 만들었습니다. 다리미 끝에서는 하얀 김이 짧게 숨을 쉬듯 오르내렸습니다. 숫자가 적힌 작은 종이표가 옷깃에 핀으로 꽂혀 있었고, 주인 아저씨의 손가락 끝은 오래된 열기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셔츠 한 장이 다리미판 위에서 차분히 엎드려 있다가, 한 번, 두 번 스침을 받을 때마다 천이 밝아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은 가볍게 부풀었다가 금세 사라졌고, 그 뒤로 남는 건 정돈된 결뿐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하루도 저런 주름으로 가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창한 실패가 아니라 자잘한 갈래들 말입니다. 약속에 살짝 늦은 발걸음, 장바구니에서 빠뜨린 두부 한 모, 미루어진 안부 전화 한 통, 밤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다음에”의 목록. 그런 작은 주름들이 겹치며 마음결이 거칠어질 때가 있습니다. 다리미가 알려주는 건, 주름이 흠이라기보다 접히며 견딘 시간의 기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힘으로 문질러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물기와 온기, 잠깐의 기다림이 있어야 비로소 풀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옷은 스스로를 매만지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 건네져야 하고, 맡겨져야 합니다. 세탁소 문턱에서 “내일 저녁이면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이상하게도 축복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희 염려를 그에게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오늘은 이 구절의 ‘맡기라’가 유독 다정하게 들립니다. 맡기는 순간 손이 비어 버리지만, 그 빈손이 허전함만 남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가벼움이 생기고, 그 가벼움이 숨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주인 아저씨는 다리미판의 모서리를 손등으로 톡톡 두드려 열을 가늠했습니다. 반짝이는 금속 표면에 잠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팔을 움직였습니다. 한 번에 펴지지 않는 주름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며 달래고, 중간에 옷걸이에 걸어 열이 가라앉도록 쉬게 했습니다. 돌봄은 종종 이렇게 반복되나 봅니다. 눈부신 기적 대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동작을 인내로 건네는 것. 돌봄은 강한 압력보다 정확한 온도와 시간을 알아보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매일 겨우 건져 올리는 짧은 기도 한 줄, 오래외워진 찬송의 반 소절도 어쩌면 그런 온도와 시간의 일부일지 모르겠습니다.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도, 마음의 결이 조금씩 반듯해지는 쪽으로 옮겨가는 듯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자, 옷걸이에는 오래 입은 외투가 조용히 걸려 있었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영수증과 동전 하나가 손끝에 닿았습니다. 종이는 얇고, 잔열도 없었지만, 세탁소의 하얀 김과 금속 소리, 다리미의 부드러운 압력이 아직 등에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의 마음도 그 김을 조금 머금은 천처럼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남은 구김이 있더라도, 불편함 속에 스미는 온기가 있다면 하루를 견디는 데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걸이에 가지런히 매달린 셔츠들처럼, 우리 각자의 하루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형태를 되찾고 있을지 모릅니다.
굳이 해답을 서둘러 찾지 않아도 괜찮겠습니다. 말없이 맡긴다는 뜻으로, 빈손을 잠시 무릎 위에 올려 두어 보는 저녁이면 좋겠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입을 빵빵히 마른 셔츠처럼 마음도 제 자리를 조금 더 기억하게 될 테지요. 그 기억이 오늘을 지나가는 우리를 조용히 붙들어 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