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15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종이와 잉크가 섞인 냄새가 먼저 반기네요. 번호표를 뽑아 손에 쥐고 서니, 천천히 움직이는 빨간 바늘이 달린 저울이 카운터 위에 눈에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작은 상자를 올리고, 누군가는 얇은 봉투 하나를 올립니다. 바늘이 흔들리다 멈추는 순간마다 누군가의 사연이 무게를 얻는 장면을 본 듯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 위에 적힌 수신인의 이름과 주소가 낯설지 않은데도, 다시 한 번 읽어 보게 되네요. 글자를 천천히 더듬는 사이, 마음이 길을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표를 건네받아 조심스레 붙이고 나니 직원이 도장을 꺼내 들고 소인을 찍습니다. 툭, 툭. 잔잔한 소리 속에 오늘 날짜가 선명히 박힙니다. 내 마음 한쪽에도 같은 날짜가 찍히는 듯했습니다. 이제 이 봉투는 더는 내 것이 아니지요. 손에서 떠난 뒤부터는 바람과 비, 여러 손길을 건너가 수신인의 하루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굽이져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오늘, 여기서 보냈다는 사실만 또렷합니다.
예전에 손편지로 소식을 주고받던 때가 떠오릅니다. 우체통 앞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곤 했지요. 넣고 나면 갑자기 가벼워졌고, 돌아서면 아득해졌습니다. 답장이 오지 않는 날도 많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사람을 더 오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떠올리려 애쓰는 시간이 그 사람을 제 마음 가까이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한 시간이어서였습니다.
기도도 그와 닮아 보입니다. 말끝마다 결과를 재보려 할 때는 바늘이 길게 떨었습니다. 그러나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말씀을 가만히 되뇌면, 저울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내가 아는 길로만 가기를 원하는 마음과, 모르는 길에 자신을 놓아 드리는 마음 사이에 얇은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종이는 가벼운데도, 때로는 가장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떼어내야 붙일 수 있고, 붙여 두어야 떠날 수 있지요.
우체국의 벤치에 잠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따뜻한 조명이 택배 박스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사람들이 제 차례를 기다리며 작은 기침이나 낮은 숨결을 나눕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봉투와 상자 속에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참 닮아 있습니다. 누군가는 축하의 과자를, 누군가는 늦은 사과의 메모를, 누군가는 어제의 안부를 보냅니다. 보내는 행위에는 늘 조금의 결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붙잡고 있던 것을 놓는 결심, 말해 버린 뒤에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결심. 그 결심이 우리를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비워 새로운 여지를 만들었습니다.
저울 앞에서 배운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무게가 정해진 다음에는 더 올리지 않는 일입니다. 과도한 마음을 더 얹지 않고, 이미 충분한 것으로 족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뒤늦게 여기 하나 더, 저기 하나 더 하며 불안을 붙잡아 매달면 바늘은 다시 흔들리고, 때로는 초과 요금처럼 예상치 못한 부담이 따라옵니다. 적당한 무게를 알아보고 멈출 수 있을 때, 보냄과 기다림이 같은 몸짓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 번호표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이제 쓸모가 없어진 작은 종이지만, 오늘의 제 마음에도 조용히 번호가 매겨진 것 같았습니다. 급한 일, 오래 미뤄 둔 일, 호명되지 못한 마음들. 언젠가 저마다 불릴 것입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바늘이 자기 위치를 찾듯 마음이 또 한 번 제 자리를 찾겠지요. 우체국을 나서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것들 대부분은 결국 누군가의 손에 닿기 위해 떠나고, 보내는 순간 우리도 조금은 가벼워진다는 사실을요. 오늘 날짜의 소인이 희미해질 때쯤, 답장처럼 다가올 어떤 평안이 이미 어딘가에서 길을 찾아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