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20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끝자락, 불투명한 등 하나가 내려앉은 구두수선소에 저녁이 들어섰습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왁스가 데워지는 냄새와 가죽의 묵직한 숨이 먼저 반겨 줍니다. 작고 둥근 망치가 리듬을 아낀 채 톡, 톡 하고 가죽을 두드리고, 잘 쓰던 칼날이 꺾인 실밥을 조심스레 집어 올립니다. 손등에 오래 묻은 광약의 색이, 그이의 세월을 시 quietly 말해 줍니다. 제가 맡긴 구두는 발볼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지요. 주인장은 한참을 만져 보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부분만 제대로 살리면, 전체가 다시 균형을 찾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하게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하루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 있었던 건 아닌지, 작은 실밥 하나가 풀리듯 마음의 매듭이 어딘가에서 느슨해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낡은 것을 숨기려 하고, 흔적을 지우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삶은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맞춰진 것을 다시 살려 내는 일이 더 많습니다. 닳아진 흔적 속에 우리가 걷고 웃고 버틴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 있으니까요.
수선대 위에는 얇은 풀칠이 발라지고, 고무창이 얹히고, 무게감 있는 쇳덩이가 덮였습니다.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덧붙었습니다. 이 접착은 서두르면 안 됩니다. 열과 시간, 그리고 눌림이 있어야 튼튼해집니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기도의 시간을 떠올렸습니다. 말들을 서둘러 내놓기보다, 잠깐 눌러 두고, 마음의 온도가 퍼지도록 두는 시간. 회복은 때로, 말이 아니라 묵음에서 자랍니다. 손대지 않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이 붙고 굳어 갑니다.
머릿속을 스치는 이사야의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 버려야 할 삶이 아니라 살려 내실 마음을 먼저 보시는 분이 계시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관계들도 그렇지요. 다투어 곧장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한쪽으로 기운 마음의 바닥을 살펴 보는 일, 오래 눌러 주는 기다림, 따뜻한 온기를 모으는 손길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미안하다는 작은 한마디, 혹은 말하지 않고 들어 주는 침묵 하나가, 전체의 균형을 다시 세웁니다.
잠시 후, 수선이 끝난 구두를 받아 신어 보았습니다. 새것은 아니지만, 발이 덜 흔들렸습니다. 걷는 리듬이 차분해졌고, 바닥이 고르게 지탱해 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가게의 빛과 냄새, 망치 소리와 기다림이 함께 만든 결과였습니다. 문을 나서며 골목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마다의 발자국으로 저마다의 길을 견뎌 왔을 것입니다. 어쩌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어딘가에, 마음 한켠의 수선대가 조용히 펼쳐질지 모르겠습니다. 서두름이 내려앉고, 따뜻한 온기와 적당한 눌림이 머무는 자리. 그곳에서 닳은 하루가 다시 붙고, 내일의 첫 걸음을 지탱해 줄 바닥이 생깁니다.
새로워지려고 애쓰기보다, 다시 붙어 가는 시간을 허락하는 저녁입니다. 손에 쥔 낡은 것들이 여전히 저를 살게 한다는 사실을, 오늘은 조금 더 또렷이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