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9월 02일 07시 01분 발행
해가 기울 무렵, 시장 끝에 있는 작은 수선방에 들렀습니다. 문턱을 넘자마자 가죽 냄새가 먼저 반겼고, 오래된 라디오에서 낮게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바닥의 톱밥과 어울려 한숨처럼 퍼졌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제 구두를 양손에 들고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얇아진 밑창을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눌러 보셨습니다. 무심한 듯 다정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분은 새 밑창을 맞추기 전에 가죽에 기름을 천천히 먹이셨습니다. 마른 땅이 비를 빨아들이듯, 검은 가죽이 반짝임을 되찾는 사이, 조그만 망치가 소리 없이 들썩였습니다. 단단, 단단— 그리고 아주 짧은 쉼. 못 하나를 박고, 다시 한 번 어루만지고, 또 한 번 쉼. 그 리듬 안에 이상한 위로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마치 서두르지 않는 손길이 우리 마음의 어두운 결까지 기억해 주는 듯했습니다.
어르신이 말했습니다. “밑창은 겉보다 속이 먼저 닳지요.” 그 말이 오래 맴돌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부터 먼저 닳아 가는 것들. 관계의 예의, 스스로를 향한 존중, 주님께 내어놓던 고백의 습관. 어느새 얇아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 큰 흠집보다도, 모래처럼 스며든 사소한 마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접착제를 바른 뒤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붙이는 일보다 붙도록 두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마음 한구석이 조용해졌습니다. 급히 말해 버린 후회, 성급히 판단했던 날들, 서둘러 끊어 버린 대화의 끝자락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재빨리 고치는 재주보다, 붙을 수 있도록 머물러 주는 시간일지 모르겠습니다. 열기와 압력이 지나간 뒤, 침묵이 접착제가 되는 순간이 분명 있더군요.
작은 못들이 반짝이며 제자리를 잡아 갈 때, 오래된 말씀 한 구절이 스며들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리라”(이사야 42:3). 수선대 위의 신발처럼, 우리도 그렇게 다뤄지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버려지지 않고, 다그쳐지지 않고, 모양을 잃은 부분만 조심스레 살려지는 배려. 그 인내의 손길이 발걸음을 회복시키는군요.
밑창을 갈아 낀 구두를 받아 들었을 때, 새것은 아니지만 낯설지 않은 단단함이 손으로 전해졌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구김처럼 남아 있어도 보기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구김 덕분에 어디가 약한지, 어디를 아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계절을 더 버틸 수 있겠다고, 신발이 조용히 자신 있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끈을 느슨히 풀며 오늘을 떠올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안쪽이 먼저 닳아 갈 때, 눈에 잘 띄는 광택보다 손끝의 기름이, 요란한 수선보다 한 번의 쉼과 기다림이 더 깊은 회복을 만들곤 했습니다. 우리 삶에도 그런 수선대가 하나쯤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렇게 여겨지는 순간이 어느 날 불쑥 찾아와, 단단— 단단— 작은 리듬으로 마음의 밑창을 붙여 주는 저녁. 그 고요한 망치질의 소리를 따라, 오래 미뤄 둔 걸음이 다시 숨을 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