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02일 07시 01분 발행
해가 기운 뒤 골목 끝에 불이 먼저 켜지는 집이 있습니다. 오래된 수선집이지요. 문을 열면 유리 진열장 아래에서 단추들이 조용히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진주빛, 나무색, 어느 코트에서 떨어져 나왔을 법한 갈색 단추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한 상자에 모여 있습니다. 코트 앞섶의 단추 하나가 헐거워져 들렀을 뿐인데, 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묘하게 마음을 눌러 주는 베개처럼 포근합니다.
주인 어르신은 낡은 천 조각을 펼쳐 그 위에 제 단추를 올려 보십니다. 실 색을 가까이 맞추느라 눈을 조금 가늘게 뜨시고는, “급하진 않으시죠?” 하고 낮게 물으십니다. 급할 것도 없는 저녁이라, 기다림 자체가 휴식이 됩니다. 긴 의자에 앉아 있는데, 바늘귀를 꿰는 그 잠깐의 정적이 방 안에 내려앉습니다. 숨을 조금 멈추어야 실이 바늘을 통과합니다. 그 순간은 늘 짧고, 그러나 기도처럼 진지합니다.
바늘은 겉에서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천을 뚫고 나와 단추의 작은 구멍을 찾아가고, 다시 안쪽으로 돌아가 매듭을 만듭니다. 눈에 거의 띄지 않는 그 매듭이 옷을 지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요. 드러나지 않는 어떤 매듭들이 하루를 붙들어 줍니다. 누군가 현관 앞에 놓아 두고 간 따뜻한 국, 한동안 잊고 살던 사람이 보낸 엽서 한 장, 처음 듣는 이름의 약을 챙겨 주던 약사님의 느린 설명, 찬송을 부르다 등 뒤에 가만 얹혀 오는 손길. 그 작은 매듭들이 옷감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이사야 42:3)라는 말씀이 이 방의 공기와 어울립니다. 꺼져 가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헐거워진 자리에서 새 실이 시작됩니다.
단추 구멍은 네 개이기도 하고, 두 개이기도 합니다. 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조용한 십자를 그립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벌어지는 틈을 지키는 것, 닫혀야 할 자리를 닫아 주는 것. 꼭 맞는 단추를 찾지 못해도, 조금 색이 다른 단추 하나가 달리면 옷은 다시 제 역할을 합니다. 완벽함 대신 맞닿음이 온기를 가져옵니다. 삶에도 그런 날들이 많았습니다. 정확히 같은 것을 되찾지 못해도, 다른 무늬의 위로가 와서 하루를 닫아 주곤 했지요.
수선집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벽시계 초침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고, 출입문 손잡이에 달린 작은 쇠 방울이 손님이 드나들 때마다 가볍게 울립니다. 주인 어르신의 손놀림은 오래 배운 기도의 문장처럼 망설임이 없습니다. 마지막 매듭을 안쪽에 숨기고, 실을 아주 바짝 잘라 내면, 일은 끝납니다. 값은 생각보다 늘 작고, 마음에 남는 것은 생각보다 늘 큽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 전 꿰맨 단추를 손끝으로 만져 봅니다. 잘 달렸습니다. 바람을 막을 만큼 단단하고, 손길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마음에도 이런 단추가 있었으면 싶습니다. 가장 자주 풀어지던 자리에, 이름 모를 친절과 조용한 믿음이 새 실이 되어 드나들고, 보이지 않는 안쪽에 작은 매듭 하나가 생기는 일. 오늘 하루를 떠올리면, 그 매듭은 이미 몇 개나 묵묵히 묶여 있었습니다.
삶은 크게 수선할 때보다, 이렇게 작은 단추 하나로도 다시 걸어 나갈 용기를 줍니다. 남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에게만 느껴지는 든든함이 생깁니다. 숨을 고르게 하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에도, 어디선가 아주 가는 실이 우리를 건너갑니다. 꼭 맞는 색이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닫혀야 할 자리가 닫히는 것, 그 사실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오늘 밤, 누구의 옷깃에, 그리고 우리의 안쪽에, 작지만 단단한 매듭 하나가 더해지는 소리를 조용히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