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의 불빛 아래

📅 2026년 06월 22일 07시 01분 발행

골목 끝 작은 수선집이 늦은 저녁까지 불을 켜 두었습니다. 문을 밀자 다리미에서 올라오는 잔열의 냄새가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벽시계는 사각사각 천천히 걸어가고, 노란 전구 아래 실타래들이 빛을 머금은 듯 둥글게 서 있었습니다. 단추를 모아 둔 철제 상자에서는 서로 다른 크기와 색이 부딪히며 작은 별자리처럼 빛났습니다. 저는 떨어진 코트 단추 하나를 손에 쥐고 서 있었고, 주인어른은 별말 없이 코트를 받아 조용히 무릎 위에 펼치셨습니다.

그분의 손놀림은 시간을 다독이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바늘귀에 실을 넣는 동안 숨이 길어지고, 천을 뚫고 나오는 바늘 끝에서 미세한 소리가 났습니다. 바늘이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오늘 하루의 잘게 흐트러진 마음도 함께 꿰매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매듭을 짓고 나서야 들리는 말은 짧았습니다. 이제 더 오래 갑니다. 그 말의 온기가 손바닥에 남아 있었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하루가 대개 그렇습니다. 거대한 파손은 드물지만, 소매 끝이 보풀처럼 일어나고, 주머니 속에 느슨한 실 한 올이 자꾸 손끝에 걸립니다. 남에게선 잘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는 알아채는 어긋남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느슨함을 몰래 접어 넣고 버텨 보지만, 어느 날은 바늘 하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상한 자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신다(시편 147:3). 싸맨다는 말이 오늘 밤 유난히 가까이 와 닿았습니다. 요란한 고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부터 차근차근 이어 가는 손길 말입니다.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기적보다, 익숙한 옷이 다시 입을 수 있게 되는 기적. 우리의 날들이 자주 그러하지요.

생각해 보면, 사랑은 바깥에서 꿰매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겨울밤 코트를 뒤집어 펼쳐 안감에서부터 손을 대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안쪽에서 단단히 묶어야 오래 간다고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우리 안쪽으로 들어오셔서, 소리 없이 매듭을 더해 주시는 듯합니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마음의 가장 얇은 부분이 덜 헤어지도록.

단추 상자 속엔 빛깔이 조금씩 다른 것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꼭 맞는 짝만 찾지 않고, 어쩌다 색이 엇나간 단추를 달기도 한다고 주인어른이 웃으며 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코트는 이전과 조금 달라지지만, 그 다름이 오히려 옷의 표정이 되곤 합니다. 우리 삶의 봉제선도 그렇게 남겠지요. 완벽함 대신 어울림으로, 감추기보다 견뎌 낸 자리를 지닌 채.

수선집 시계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골목 바깥 공기는 제법 차가웠습니다. 단추 하나가 제 자리를 찾자, 코트 주머니가 갑자기 든든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값비싼 새로움이 아니라, 계속 입을 수 있겠다는 안심이 생겼습니다. 오늘 하루도 어딘가에서 이런 작은 고침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말로 다하지 않아도 서로의 빈틈을 알아차린 한 통의 전화, 끓는 냄비에서 퍼져 나온 소박한 냄새, 잠자리에 들기 전 짧게 떠오른 감사 하나. 그런 것들이 얇게 벌어진 틈을 조금씩 붙들어 주는 듯합니다.

집으로 걸어오며 코트를 여며 보았습니다. 매듭 하나가 포근함이 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내일 또 다른 실올이 느슨해질지라도, 어디선가 여전히 불을 켠 작은 방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불빛 아래에서, 우리 삶은 다시 입을 수 있는 옷이 되어 가는 중이겠지요. 오늘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나의 매듭이 생겨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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