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9월 20일 07시 01분 발행
버스정류장 옆, 지하로 내려가는 낮은 계단 아래에 작은 수선집이 있습니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문턱 안쪽의 불빛은 더 또렷해지고, 선반 위에는 색색의 실뭉치가 층층이 앉아 있습니다. 금속 지퍼가 닳은 소리, 재봉틀이 내는 잔잔한 진동, 스팀 다리미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김이 그 공간의 숨결을 만듭니다. 바깥은 퇴근길의 발소리가 흐르고, 안쪽은 오래된 손의 리듬이 천천히 이어집니다.
한 사람의 손이 해어진 소매를 살핍니다. 얇은 분필 자국이 박음질의 길을 그어 놓고, 바늘은 그 길을 따라 조용히 드나듭니다. 한 땀, 또 한 땀, 천이 서로를 다시 알아보는 듯 맞물립니다. 다리미가 지나간 자리에는 주름이 눕고, 주름이 잠든 자리에는 부드러운 빛이 머뭅니다. 무엇 하나 성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아 더 정직한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조금씩 닳았습니다. 들려주려다 삼킨 말이 있었고, 선의로 했지만 서툴렀던 손길이 있었고, 마음 안쪽에서 실밥처럼 풀리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큰 용기가 필요했던 사과는 끝내 타이밍을 놓치고, 사랑은 여전하지만 표현은 힘이 달릴 때가 있습니다. 해진 것은 그저 해진 채로 남아 있지요. 해가 잠기고야 비로소, 수정되지 못한 일들이 조용히 드러나는 밤이 있습니다.
수선집의 바늘은 큰 칼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잘라내기보다 이어 줍니다. 상한 가장자리 옆을 오래 만지며 천의 결을 읽습니다. 성급히 잡아당기면 더 찢어진다는 것을 알고, 조금 느슨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매듭을 지어 둡니다. 설명보다 온기가 먼저 필요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스팀처럼 은근한 온도에서 마음이 풀린다는 것을 이 손은 압니다.
믿음도 종종 그렇게 작업대를 닮아 있습니다. 기도는 거창한 구호보다, 조용한 한 땀으로 이어지는 날들이 많습니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천이 되고, 남은 자투리가 새 단추의 받침이 됩니다. 우리를 아시는 분은 버릴 조각을 쉽게 정하지 않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이 이 밤의 스팀처럼 서려 있습니다. 손바닥의 굳은살 같은 시간도 그분 안에서는 연해질 때가 있습니다.
문득, 수선이 끝난 소매를 들여다봅니다. 대견하게 눈에 띄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가 된 듯, 조용한 힘을 품고 있습니다. 눈에 가까이 대어야 보이는 박음질 사이사이에 어떤 마음이 통과했는지 은근히 빛이 납니다. 그 빛은 누군가의 서툴렀던 오늘을 정죄하지 않고, 내일의 움직임을 조용히 받쳐 줄 것 같습니다.
가게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지면, 바닥에 떨어진 작은 실조각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침이면 빗자루가 그것마저 모아 하나의 더미로 만듭니다. 흩어진 자잘함도 함께 있으면 무게가 생깁니다. 오늘의 우리도 그랬습니다. 흩어진 순간들이 이 밤 한자리에 모여, 보이지 않던 결을 드러냅니다. 마음 주머니 한쪽, 손가락에 감긴 실 한 올의 감촉처럼 따뜻한 것이 남습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위로가, 아주 작지만 분명한 매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