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에서 듣는 숨

📅 2026년 02월 15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골목을 돌아서면 오래된 시계방이 있습니다. 문 손잡이는 손때에 반들거리고, 유리 진열장 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시계들이 조용히 누워 있습니다. 귓가로 가까이 가져가면 아주 미세한 박동이 들립니다. 딱, 딱. 누구의 하루보다 성실하고, 눈물보다도 솔직한 소리입니다.

주인 어르신은 돋보기를 눈에 끼우고 작은 집게로 나사를 집어 올립니다. 손끝이 떨리지 않습니다. 한쪽 귀를 살짝 기울인 채,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벗의 숨을 듣듯 시계를 응시합니다. 이 친구는 조금 서두르는군요, 중얼거리며 용수철을 한 칸 놓아 줍니다. 다른 시계는 잠깐 쉬어 가는 성미라며, 가볍게 중심을 다시 맞춥니다. 억지로 돌리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스스로 자리를 기억할 틈을 주는 모습입니다.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우리도 어느 날은 앞질러 달리고, 어느 날은 뒤에 남습니다. 기쁜 소식 하나면 초침이 가벼워지고, 염려가 깊어지면 톱니 사이로 모래가 스며든 듯 발걸음이 둔해집니다. 누구는 약속에 늦지 않으려 손목을 자꾸 들여다보고, 누구는 아픈 소식을 품고 시간이 멈춘 듯 앉아 있습니다. 그래도 가게 안의 모든 시계가 자기 소리를 내듯, 우리 안에서도 작은 박동은 끝내 사라지지 않습니다.

숨 고르듯 멈칫하면 들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진열장 뒤편 괘종시계의 진자가 왼쪽과 오른쪽을 정직하게 오갑니다. 목적지로 달려가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세웁니다. 문 틈으로 들어온 오전빛이 공중의 먼지를 금빛 알갱이로 띄우고, 그 사이로 어르신의 손등에 새겨진 세월이 반짝입니다. 오래 기다려 온 손, 서둘러 고치지 않는 손, 기계가 가진 본래의 호흡을 믿어 주는 손입니다.

시편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 31:15). 그 문장을 떠올리자 가게 안의 모든 소리가 조금 더 분명해졌습니다. 주어진 때가 허투루 흐르는 것이 아니라, 손안에서 조율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번졌습니다. 지금 내 마음의 초침이 빠르든 느리든, 그 손은 한 칸의 여유를 주거나, 반 바퀴의 용기를 더해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마지막으로 부드러운 천으로 시계를 닦아 줍니다. 금속에 묻은 지문을 지우는 일이, 그날의 염려를 가볍게 문지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닦고 나면 비로소 표정이 드러납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누구의 손목에 얹히느냐에 따라 다른 하루를 살아낼 것입니다. 때로는 서랍 속에서 잊혀질 때도 있겠지요. 그래도 안쪽의 바퀴들은 오래 연습한 춤을 잊지 않는 듯합니다.

가게를 나서자 골목의 리듬이 한꺼번에 들려옵니다. 계산대에서 눌리는 버튼 소리, 천천히 숨을 고르는 버스의 엔진, 채소 비닐봉지가 스치는 마찰음, 멀리서 아이가 부르는 누군가의 이름. 서로 다른 속도가 뒤섞여 하나의 낮을 만듭니다. 손목 위의 초침은 새로 배운 보폭을 조용히 기억합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이라는 길은 늘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박자의 정확함에서 탄생하는 듯합니다. 약속의 문 앞에서 서두르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이 번갈아 설득을 주고받는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조율이 일어납니다. 그 조율이 내 안의 소음을 덜어 주고, 말끝에 남는 거친 숨을 부드럽게 만져 줍니다.

하루를 다 건너기 전에, 저는 시계방에서 들었던 그 소리를 떠올립니다. 딱, 딱. 지나온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서로 손을 맞잡는 소리. 그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주어진 때가 제 안에서 길을 낼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각자의 박자를 살피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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