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에서 배운 숨

📅 2026년 02월 21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골목 안쪽, 유리 진열장에 둥근 뚜껑들이 겹겹이 놓여 있는 작은 시계방에 들렀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서로 다른 박자의 초침들이 고요한 합창처럼 귀를 적셨습니다. 먼지 입자 하나하나가 겨울 햇빛을 타고 유리 위에 내려앉고, 주인 어르신의 돋보기 너머로 얇은 스프링이 미세하게 숨 쉬듯 떨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하루를 팔목에 얹어 보내온 손길이, 오늘도 한 대의 시계를 조심스레 뒤집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말합니다. 시계가 갑자기 완전히 고장 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고요. 대개는 조금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어느 순간 엇박자가 생긴대요. 그 어긋남을 바로잡으려면 한참을 듣는 일이 먼저라고요. 바늘이 가는 소리보다 그 사이의 정적, 그 미세한 멈춤을 들어야 한다고, 그래서 어디가 주저앉았는지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고요. 망가진 줄 알았던 시계가 힘을 다시 얻는 때는 오히려 억지로 돌릴 때가 아니라, 서서히 숨을 고르게 자리를 내어줄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듣다 보니, 우리의 하루도 그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완전히 멈춰 서는 일보다, 조금씩 앞서가다 헐떡이거나 뒤로 물러서다 마음이 풀썩 주저앉는 순간들이 더 많지요. 미루어 둔 안부 전화, 답하지 못한 메시지들, 식탁 한가운데 남은 빈 의자 하나, 화면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소식들. 그런 것들이 아주 작지만 끈질긴 먼지처럼 우리 안의 균형추에 매달려, 박자를 흔들어 놓곤 합니다. 겉으로는 바쁘게 움직였는데, 정작 안쪽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은 듯한 날도 있지요.

어르신은 작은 병에서 기름 한 방울을 손바닥의 온기로 덥히고, 축에 딱 한 점을 떨어뜨렸습니다. 넉넉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기름이 과하면 도리어 먼지가 더 달라붙어 움직임이 둔해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또렷해졌습니다. 설명이 많을수록, 계획이 클수록, 약속이 화려할수록 반드시 가벼워지는 건 아니었지요. 오히려 아주 작고 따뜻한 한 방울의 배려, 한 호흡 길이의 침묵, 뜻밖에 마주친 시선 하나가 우리 안의 축을 부드럽게 풀어 주곤 했습니다. 오늘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건 큰 결심이 아니라, 과하지 않은 작은 온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리는 마지막에 표준음에 귀를 대어 맞춘다고 했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짧은 ‘삑’ 소리와 시계의 ‘틱’이 겹쳐지는 그 순간, 방 안에 낯익은 신뢰가 번졌습니다. 어쩌다 아직 미세한 차이가 남는 날도 있다고 했습니다. 좋은 시계는 그 차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음 박자에서 천천히 따라잡는 법을 알고 있대요.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 삶에도 그런 박자가 있지요. 맞지 않는 순간을 견디면서도, 잃어버린 박을 조용히 찾아가는 힘 말입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편 31:15)라는 한 구절이 그때 귓가에 내려앉았습니다. 시계를 맡기고 돌아서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시간을 다그치지 않고, 맡길 수 있는 손이 있다는 듯이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우리도 종종 마음의 등짝을 살짝 맡겨 보곤 하지요. 완벽히 맞추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도, 누군가의 손에서 우리의 때가 깊고 안전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은 이상하리만큼 어깨를 펴게 합니다.

가게 문을 나서자, 팔목의 금속 밴드가 서서히 체온을 닮아 갔습니다. 귀에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틱’이 맥처럼 가볍게 전해졌습니다. 크지 않은 소리인데도, 발걸음에 리듬이 생겼습니다. 노란 신호등이 바뀌는 시간, 종이컵에서 나는 김, 골목을 지나는 카트의 바퀴 소리 사이에서, 우리 안의 작은 시계방이 조용히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차이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박자는 다시 우리를 찾아옵니다. 귀를 대고 있으면, 그 소리가 스스로 길을 냅니다. 오늘도 그 보폭으로, 하루가 다시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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