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23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오전, 오래된 시계방 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작은 종이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이내 방 안엔 각기 다른 박자를 가진 초침들의 소리가 겹겹이 들려왔습니다. 누구는 앞서가고, 누구는 뒤처지는, 잔물결 같은 소리였습니다. 유리 진열장 위로 햇빛이 얇게 흘렀고, 뒷모퉁이엔 기름 냄새가 가볍게 떠 있었습니다. 뻐꾸기시계는 오후를 모르는 척 조용했고, 알람시계들은 작은 등을 기대듯 서로 가까이 놓여 있었습니다.
주인은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제 벽시계 뒤판을 조심스레 열었습니다. 차분한 손놀림으로 먼지를 털고, 바늘을 아주 조금 옮겨 놓았습니다. “시간이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흐르지요.” 그가 고개를 들며 말했습니다. “조금 빨리 가는 시계는 서두르는 이에게 위로가 되고, 조금 느린 시계는 기다리는 이에게 길을 만들어 줍니다. 중요한 건, 자기 걸음과 맞는지지요.” 그의 손끝이 초침을 살짝 눌러 멈칫하자, 방 안의 박자가 잠시 한 줄로 모였습니다. 이윽고 다시 흐르기 시작한 소리. 마치 조율을 끝낸 작은 합창 같았습니다.
사람의 하루도 종종 이렇게 비껴나갑니다. 말을 너무 일찍 꺼내고, 침묵을 너무 늦게 고르고, 용서와 감사는 마음에서만 맴돌다가 때를 놓칠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는데, 오히려 더 빠져나가 버린 적도 있었지요. 그럴 때 생각이 납니다. 저 초침 하나에 머물렀던 손길처럼, 보이지 않는 분의 조용한 조율이 우리 안에서도 늘 일어난다는 것을요. 꾸짖는 소리보다 묵직한 숨으로, 서두르기보다 기다림으로, 틀린 것이 아니라 어긋난 것을 ‘다시 맞추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손길 말입니다.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 있어 본 이들에게는 시간이 더 잘 보입니다. 병원 복도의 한 칸, 엘리베이터 앞의 작은 정지, 밥물이 끓기를 바라보는 부엌의 순간들. 그 사이사이 멈춤들이 불편한 공백처럼 느껴지다가, 어느 날엔 마음의 틈이 되어 빛이 스며듭니다. 전도서의 오래된 고백처럼,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는 문장이 오늘 시계들 사이로 슬며시 걸어옵니다. 서둘러 지나친 장면들에 작은 북마크를 붙여두듯, 지금의 호흡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듭니다.
주인은 새 배터리를 끼우고 뒷판을 닫았습니다. 초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제 가슴에서도 따라오는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과를 재는 저울이 아니라, 동행을 알려주는 박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내일을 재촉하는 북이 아니라, 오늘의 걸음을 받아주는 북소리 말입니다. 문을 나서니 바깥의 소음들도 낯설지 않게 섞여 들렸습니다. 자동차의 경쾌함, 전봇대 사이로 흘러드는 새소리,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 그 모든 소리 위에, 방금 맞춰진 시계의 박자가 마음 안쪽에서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때로는 빨라져 버린 마음이 하루를 앞질러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주저앉은 발걸음이 시간의 뒤에서 숨을 고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도 오늘이라는 면 앞에 앉아, 어제의 그늘과 내일의 그림자를 한 겹씩 떼어내다 보면, 내게 주어진 리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그 리듬이 다른 누구의 박자와 같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장롱 속 오래된 시계가 여전히 제 자리에서 낮게 숨 쉬듯, 삶도 제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문턱을 넘어 나오며, 이 느린 박자에 마음이 살짝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한동안은 이 작은 초침 소리가 동무가 되어 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