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의 느린 숨

📅 2026년 08월 25일 07시 01분 발행

오후의 빛이 골목을 천천히 따라 내려오던 날이었습니다. 작은 간판 하나가 삐걱이며 흔들렸고, 그 아래로 오래된 시계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쇠와 기름이 섞인 낯익은 냄새가 먼저 반겼습니다. 벽에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시계들이 가지런히 기대어 있었고, 각자의 박자로 조용히 시간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빠른 소리, 둥근 소리,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 마치 여러 사람의 호흡이 포개져 하나의 숨결을 이루는 듯했습니다.

주인은 안경에 돋보기를 얹고 작은 나사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깊이 숙인 어깨 위로 거친 조명이 내려앉아 금빛 먼지들을 반짝이게 만들었습니다.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마치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잠시 말없이 그 손놀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삶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작은 조정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분마다 알림을 보내지만, 마음속에는 늘 늦거나 앞서 가는 시계가 따로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멈춰선 순간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빨라져 버린 계절이 있습니다. 시계방의 주인은 시간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시간을 사는 그릇을 다듬고, 기어 사이의 마찰을 덜고, 박자를 균등하게 맞출 뿐이었습니다. 그가 귀를 가까이 대고 ‘딱-딱’의 간격을 듣는 모습에서, 저는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지 모른다고 느꼈습니다.

한때 우리 집 벽시계도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긴 병상 끝에 조용히 빈자리가 생겼던 해였습니다. 장례를 치른 뒤 한동안 그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바늘은 오후 두 시 열일곱 분을 가리킨 채, 마치 집 안의 공기와 함께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 어느 날, 가만히 뒤뚜껑을 열어 먼지를 닦고 축 늘어진 줄을 다시 당겼습니다. ‘딱’ 하고 작은 소리가 나더니, 바늘이 한 칸 움직였습니다. 그날의 진동은 마음에도 전해졌습니다. 누가 시간을 되돌린 것은 아니었지만, 정지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아주 작은 소리로 들어왔습니다.

성경에 “내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시편 31:15). 시계방의 그 고요 속에서 이 구절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주님의 손은 종종 큰 시계를 흔들기보다, 보이지 않는 뒤쪽에서 작은 톱니를 어루만지고 미세한 기울기를 바로잡는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 크게 돌아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하루였는데, 작게 들여다보니 무언가의 박자가 고르게 맞아 들어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의 마찰이 덜컥거림 대신 잔잔한 미끄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인은 낡은 시계를 덮개 위쪽에서 부드럽게 문질렀습니다. 긁힌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광택이 도는 면이 그 흠집을 다르게 품고 있었습니다. 상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빛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눈에 남았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들도 그렇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일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도, 빛이 닿는 방향이 바뀌면 표정이 달라지는 법이니 말입니다.

문을 나서자 골목의 공기는 아직 따뜻했습니다. 주머니 속 전화기에서 전하는 시간과, 귓속에서 여운처럼 울리는 ‘딱-딱’의 박자는 묘하게 다른 온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고, 골목 끝으로 이어진 오후의 길이가 이전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하루가 늘어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안에서 시간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조금 또렷해졌습니다. 오늘이 무엇을 바꾸어 놓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느린 숨이 저녁까지 이어진다면 충분하겠다는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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