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의 숨결

📅 2025년 11월 03일 07시 01분 발행

골목 끝, 유리문에 희미한 금박 글씨로 ‘시계수리’라고 적힌 가게가 있습니다. 오후 빛이 얇은 먼지 사이로 내려앉고, 작은 테이블 위에는 손톱만 한 나사들이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주인 어르신은 한쪽 눈에 돋보기를 끼고, 손끝으로 아주 느리게 톱니를 건드립니다. 금속이 닿을 때마다 나는 작고 맑은 소리, 그리고 가게를 채우는 각기 다른 똑딱거림. 셈을 하려면 금세 헷갈릴 만큼 제각각의 박자가 겹칩니다. 빠른 것도 있고, 겨우 따라오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숨을 고르듯 멈칫합니다.

벽에 기대 선 채로 저는 집에서 가져온 벽시계의 배터리를 바꿀 차례를 기다립니다. 어르신은 제 시계를 들어 귀에 대봅니다. 오래 들으신 분답게, 얼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말 대신 박동을 읽어내십니다. 그 사이 한쪽 구석에서는 가느다란 붓으로 유리 가장자리를 닦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머니시계 덮개가 닫히며 낮은 찰칵 소리를 냅니다. 가게 안의 시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문득 생각이 납니다. 우리도 하루를 한 가지 속도로 살지 못했지요. 어떤 날은 아침이 길게 늘어나서 점심을 한참 기다리게 하고, 또 어떤 날은 저녁이 너무 빨리 닿아 계획해 둔 말을 미처 꺼내보지 못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 길게 남아 가슴을 눌러놓을 때도 있고, 길게 흘렀던 세월이 사진 한 장처럼 접힐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가끔 스스로의 박자를 의심합니다. 남의 속도를 부러워하며 내 시계를 재촉해 보기도 하고, 멈추어야 할 때를 모른 채 계속 바늘을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어르신이 작은 드라이버로 나사를 살짝 조입니다. 그러곤 웃듯이 말 없이 제 시계를 탁자 위에 눕혀 다시 귀를 대봅니다. 아주 미세한 조정이었을 텐데, 소리가 달라졌습니다. 서둘러 앞으로 내달리던 발걸음이 조금 가라앉고, 뒤처지던 숨이 조금 더 깊어지는 느낌. 누군가 내 속도를 존중해 주며 손을 보탠 듯합니다. 어르신이 말합니다. “처음 만든 사람의 의도랑, 지금 주인의 손에 있던 시간이 서로 만나야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맴돕니다.

우리는 자기만의 박자를 가진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어떤 삶은 낮게 울리고, 어떤 삶은 또렷하게 울립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계를 똑같이 맞추는 일이 아니라, 본래 그 시계가 지닌 고유의 결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잃지 않는 일 같았습니다. 균열이 있는 유리를 닦아낼 때도, 상처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다시 잘 보이도록 투명함을 되찾는 것처럼. 우리의 흠과 흔적이 지워지지 않아도, 그 사이로 흐르는 시간의 의미가 다시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경의 한 구절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편 31:15) 제게 이 말은, 무언가를 급히 돌려놓겠다는 약속보다, 귀를 대고 끝까지 들어주는 마음으로 들립니다. 어르신이 시계를 귀에 가져다 대던 그 모습처럼, 주님도 우리의 틱과 탁 사이를 오래 듣고 계시는 듯합니다. 너무 빠르면 한숨을 덧대 주시고, 너무 느리면 작은 빛을 더해 주시며, 제 살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속도로 곁에 서 계십니다.

가게를 나서자 거리의 소음이 다시 한 덩어리로 밀려옵니다. 주머니에는 가느다란 영수증이 하나 들어 있습니다. 오늘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고, 아래에는 ‘점검’이라는 짧은 단어가 쓰여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시계를 벽에 걸면, 방 안이 작은 박동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는 일이, 무엇을 서두르기 위한 신호가 아니라, 제게 맡겨진 시간과 다시 인사를 나누는 문안이 되면 좋겠습니다. 바늘이 한 칸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 함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오늘 제 시간은 이 소리에 기대어, 제 자리를 조금씩 찾아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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