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6월 28일 07시 00분 발행
비가 그치고 난 골목에 오래된 유리 간판이 반짝였습니다. 바랜 금빛 글씨로 ‘시계수리’라고 적혀 있었지요. 문을 밀자 작은 방울 소리가 떨렸고, 안에서는 여러 개의 초침이 겹쳐 만드는 미세한 파도가 흘렀습니다. 금속과 기름 냄새 사이로 누군가의 하루가 분해되고 조립되는 느낌이 났습니다.
주인은 한쪽 눈에 작은 루페를 끼고, 벨벳으로 덮인 작업대 위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제 앞에는 오래 멈춰 있던 손목시계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유리에는 가느다란 금이 갔고, 뒷면엔 지워지지 않는 흠집이 여러 개였지요. 주인은 말을 아끼고, 단지 뚜껑을 열어 머리카락처럼 가는 태엽과 톱니를 보여 주었습니다. 얇은 핀셋 끝에 한 방울의 오일이 맺히고, 그 작은 빛이 방 안의 모든 시간을 한순간 붙잡는 듯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빠름이 아니라 고른 숨이에요.” 주인이 낮게 말했습니다. 귓가에 얹히는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습니다. 가장 작은 부품이 제자리를 찾으면 초침은 달리지 않고 걸음을 맞춘다는 뜻일까요. 저는 그 말이 사람의 마음에도 그대로 옮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루를 앞질러 달리던 때보다, 균형을 회복하려 애쓸 때 더 멀리 와 있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작업대 위에서 탈진기와 밸런스휠이 아주 느린 춤을 추었습니다. ‘붙잡음’과 ‘놓아줌’이 교대로 오가며 시간을 전진시키고 있었습니다. 전도서가 고백하듯, “범사에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며 웃을 때가 있다”는 말이 이 작은 기계 안에서 몸을 가진 진실처럼 들렸습니다. 우리도 붙잡아야 할 때가 있고, 놓아야 할 때가 있지요. 붙잡을 줄만 알면 톱니는 닳고, 놓을 줄만 알면 축은 헛돕니다. 둘 사이를 오가는 호흡이 시간을 앞으로 보냅니다.
살다 보면 멈춰 버린 시각이 하나씩 마음의 서랍에 들어갑니다. 그날의 공기, 말하지 못한 인사,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 같은 것들이 함께 잠들어 있지요. 누구에게는 아침의 ‘7시 12분’이, 또 누구에겐 겨울밤의 ‘11시 58분’이 그렇게 남습니다. 주인은 서두르지 않았고, 저도 그 느림을 따라 고개를 숙였습니다. 기계가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도 고침은 언제나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묵묵히 전해졌습니다.
오일이 스며들고, 작은 나사가 반 바퀴 돌아갈 즈음 초침이 아주 조심스럽게 한 칸을 떼었습니다. 다시 멈추나 싶을 만큼 미약했지만, 곧 고른 보폭으로 걸음을 이어갔습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데, 마음 한가운데서도 미세한 “딸칵”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소란스러운 기쁨이 아니어도, 다시 움직이는 일에는 분명한 빛이 깃든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시간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도 이런 장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장난 흔적을 탓하지 않으시고, 멈춘 이유를 캐묻기보다 먼저 오일 한 방울의 자비를 건네시는 분. 큰 소리로 재촉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다시 호흡을 맞출 때까지 곁에서 똑같은 박자로 기다려 주시는 분. 때로는 시간을 고치기보다, 시간을 견딜 힘을 주시는 분 말입니다.
계산을 마치고 문밖으로 나올 때, 비에 씻긴 골목이 얌전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웅크린 빗물 웅덩이에 좁은 하늘이 한 조각 접혀 있었고, 그 위로 간판의 금빛 글씨가 흔들렸습니다. 손목 위 시계는 제 체온을 조금 받아들였는지, 이전보다 부드럽게 움직였습니다. 버스 시간표가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사람들 각자의 박동이 서로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서로의 속도를 흉내 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가 가슴팍에서 얇게 펴졌습니다.
오늘의 남은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커다란 결심이나 번쩍이는 계획보다, 고른 숨 하나가 더 오래 우리를 붙들어 줄지 모르겠습니다. 서랍 속 멈춘 시각들은 언젠가 고침을 받을 것이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도 제 자리를 찾겠지요. 시계수리점의 오후가 가르쳐 준 것은 특별한 비밀이 아니라, 아주 작은 톱니 하나의 성실함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귓속 어딘가에서 “딸칵, 딸칵” 고른 소리가 이어집니다. 그 소리를 따라 마음의 분침이 천천히 제 자리를 되찾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