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22일 07시 02분 발행
시장 골목 끝, 손바닥만 한 신발 수선소에 들렀습니다. 문을 밀자 얇은 종종걸음 같은 망치 소리가 귓가를 채웠습니다. 구두약과 고무, 약간의 먼지 냄새가 섞여 오래된 책장 같은 기분을 만들었습니다. 낮은 스탠드등 아래, 주인장은 고개를 숙인 채 낡은 밑창을 꿰매고 있었습니다. 송곳 끝이 가죽을 찾는 동안 그의 숨과 망치의 리듬이 서로 박자를 맞추었습니다.
벽 한쪽에는 닳은 굽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고, 각자의 모서리마다 걷던 날들의 방향이 남아 있었습니다. 오른쪽으로만 기울었던 굽, 비에 젖어 굳은 가죽, 자갈에 긁힌 흔적. 신발은 말이 없지만, 발걸음의 비밀을 오래 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 맡겨둔 신발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으니, 사람들의 발이 벗겨놓고 간 하루들이 바닥에 조용히 모여 있는 듯했습니다. 계산대 옆 작은 접시에는 맞지 않는 단추와 부러진 지퍼머리, 쓰다 만 끈의 마디가 섞여 있었는데, 버려지지 못한 것들의 자리도 따뜻해 보였습니다.
주인장은 먼저 속굽을 덧대고 나서 겉창을 맞췄습니다. 바늘에 묻힌 왁스가 실을 반들반들하게 만들며 저항을 줄였습니다. 서두름이 없었습니다. 가죽의 단단함을 손끝으로 더듬고, 알맞은 힘을 찾을 때까지 숨을 고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밑면이 정갈해지는 광경을 보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필요할 때 건네받은 한 마디가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옆을 지켜준 한 사람이 있었고, 이름 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못처럼 안쪽에 박혀, 흔들리는 하루를 잡아 주곤 했습니다.
가죽의 해진 가장자리를 다듬으며 주인장은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찢어진 데는 더 부드럽게 대해야 튿어지지 않아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오래 익숙한 문장이 마음에 겹쳐졌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이사야 42:3). 신발 한 켤레에도 적용되는 이 섬세함이 우리 삶에도 스며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부드러움이 약함이 아니라, 이어 붙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어 주는 때가 있었습니다.
잠시 뒤, 빨간 어린이 운동화 한 짝이 작업대에 올랐습니다. 뒤축은 비스듬히 닳아 있었고, 만화 스티커는 반쯤 벗겨져 있었습니다. 주인장은 숫돌로 굽을 고르게 다지고, 작은 못을 두엇 박아 균형을 맞췄습니다. 빗물 고였던 주름은 완전히 펴지지 않았지만, 새 밑창이 발에 맞도록 손으로 오래 눌러 주었습니다. 내일 이 신발을 신는 아이의 발걸음이 교실 복도를 건널 때, 그동안 나던 삐걱임이 사라지겠지요. 벗겨진 스티커 자리는 빈 자리로 남겠지만, 빈 자리도 어쩐지 단정하게 보였습니다.
마침 제 신발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종이로 감싼 채 고무줄로 고정된 무게가 손에 쥐어지자, 한동안 미뤄 두었던 보폭이 마음속에서 다시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아 크게 달라진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밑창은 견고해졌고, 발이 닿는 속은 더 폭신해졌습니다. 삶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길이 바뀌지 않아도, 밑면이 달라지면 발끝이 다른 말을 합니다. 남은 흠집은 지워지지 않지만, 광택이 도는 만큼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지나간 시간을 흰 지우개로 없애시기보다, 그 위에 실을 얹어 천천히 이어 붙이시는 장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시고, 안쪽부터 단단히 세우신 다음, 보이는 자리까지 조용히 매만지십니다.
가게를 나서며 봉투 안 신발이 서로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일 아침 문지방을 넘어설 첫 발, 그 작은 소리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오래 닳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던 면이 새로 견디게 된다는 것은, 마음에도 한 줄의 온기를 남깁니다. 묵은 하루와 새 하루가 맞닿는 경계가 어디쯤일까 생각하다가, 망치의 느린 박자가 아직도 발등에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리듬을 따라 오늘을 건너가도 충분하겠다는 마음이 조용히 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