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을 드러내는 시간

📅 2025년 11월 17일 07시 02분 발행

교회 사무실 서랍에서 오래된 연필깎이를 꺼냈습니다. 손잡이가 달린 금속 몸체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졌고, 작은 칼날은 여전히 제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뎌진 연필을 꽂고 손잡이를 돌리자 낮은 긁힘이 연속으로 이어지고, 노란 나무 향이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얇은 조각이 나선처럼 길게 말려 종이컵 안에 차분히 누웠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필의 몸이었던 그 조각이, 이제는 글씨를 위한 비켜섬이 되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마음의 연필도 자주 무뎌지는 듯합니다. 기억의 끝이 둔해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 일상이라는 종이에 대고 써 내려가던 의욕이 미끄러지는 오후, 말끝이 자꾸 둥글어져 전하고 싶은 마음의 모양을 놓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한때 길게 자라 있던 자신감이 어디로 갔는지, 왜 이토록 힘이 덜 들어가는지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연필처럼 우리도 어디선가 살짝 깎여야 새로 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깎이는 그 느낌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질 때가 있지요.

연필깎이를 돌리고 있는 제 손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렸습니다. 급하게 쓸어내리거나 성급히 깎지 않으시고, 손바닥에 살짝 기대어 한 바퀴, 또 한 바퀴, 깊이를 가늠하듯 천천히 돌리게 하시는 분. 칼날이 너무 서두르면 심이 부러진다는 사실을 우리보다 먼저 아시는 분. 그래서 때로는 오래, 그리고 조용히. 멈춰 서 있는 시간이 꼭 헛된 지체가 아니라, 다시 선명해지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됩니다.

나선처럼 말려 내려오는 나무 조각을 보며, 하루 동안 제 안에서 비켜선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고집 한 줌, 불필요한 설명, 해명하려던 자존심의 모서리, 미루어둔 마음의 손짓. 그것들이 얇게 깎여 나갈 때, 누군가의 말이 제 안으로 더 잘 들어오고, 한 문장이 더 분명해졌습니다. 잃는 것이 아니라 비워지는 것이고, 비워짐은 종종 쓰임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사 42:3)는 말씀을 떠올리면, 부러진 연필 심도 버려지지 않는 장면이 겹쳐집니다. 잘 맞물려 다시 끼워 쓰면, 어제 끊어진 자리 바로 옆에서 오늘의 문장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의 끊김을 새 연결로 바꾸어 오셨다는 기억이 마음을 단단히 잡아 줍니다.

나무 향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짧은 향기만으로도 사무실의 공기가 새로워졌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작은 리듬으로 손잡이를 돌리는 동안, 마음의 호흡도 일정해졌습니다. 조각이 쌓일수록 연필의 끝은 가늘어지고, 그 가느다란 끝에서 오히려 묵직한 첫 획이 시작되었습니다. 무게는 굵기에만 있지 않다는 소소한 진실을, 오늘 연필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믿음의 여정도 비슷했습니다. 화려한 문장을 꿈꾸던 때가 있었고, 거침없이 써 내려가다 종이를 찢어버리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말하지 않은 것, 설명하지 않은 사이, 그 여백에 하나님께서 적어 넣으시는 뜻이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여백이 넓을수록 빛이 더 고르게 번져 보이듯, 마음의 빈 자리에도 은근한 온기가 머물렀습니다.

종이컵에 수북이 쌓인 나무 조각을 버리려다 잠시 멈췄습니다. 방금 전까지 제 손에서 일어난 일의 흔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도 이와 비슷해서, 쓸모없어 보일 때가 많지만, 사실은 앞으로 쓸 문장을 위해 마련된 침묵의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새로 선명해진 연필 끝을 살짝 종이에 대보니, 오래 찾던 단어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안에도 나선형 조각이 한 줌 쌓여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얇은 조각에서 나는 잔잔한 향을 가만히 맡다 보면,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이 우리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아마도, 누구를 살리기 위해, 아주 작은 힘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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