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빛이 맑아지는 동안

📅 2026년 02월 19일 07시 02분 발행

아침 부엌은 말수가 적습니다. 스테인리스 대접 안으로 마른 쌀이 쏟아질 때,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하루의 문을 엽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소리만으로 집안의 숨이 고르게 들리곤 하십니다.

물을 대접 가로로 기울여 붓고, 손바닥을 펴서 쌀을 감싸듯 젓습니다. 물은 금세 우윳빛으로 변하고, 곁에서 햇빛이 슬며시 비치면 그 탁한 빛 안에서도 은은한 환함이 피어납니다. 예전 어머니의 손마디가 기억나십니까. 손등까지 물을 잠기게 하고, 손목의 힘으로 적당한 속도를 찾던 그 습관 말입니다. 몸은 오래된 기억으로 길을 아는 듯합니다.

첫물에는 겨와 먼지가 떠 있습니다. 둘째 물은 오히려 더 탁해지는 때가 있지요. 사이가 가장 흐린 순간을 지나야 비로소 맑아지듯, 마음도 그 비슷한 길을 밟는 것 같습니다. 진실한 물과 닿을 때, 내 안의 굳은 가루들이 슬며시 풀려나와 한동안 흐림을 만들곤 하니까요.

대접 가장자리에는 얇은 빛의 고리가 앉아 있습니다. 탁한 물에도 빛은 길을 잃지 않는구나, 그 조용한 사실이 위로로 와닿습니다. 주께서는 큰 소리보다 세미한 소리로 가까이 오시던 때가 많았지요. 오늘의 부엌에도 그 작은 울림이 머무는 듯합니다.

헹구는 동안 몇 알의 쌀이 배수구로 몰려갑니다. 아까운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지만, 밥은 여전히 밥이 됩니다. 사랑이란 계산기의 단추보다 넉넉한 마음에서 건너오는 법인지요. 조금의 상실이 남아 있어도, 그 빈자리로 향기가 드나드는 때가 있음을 배웁니다.

맑아진 물을 따라내고 쌀을 잠깐 쉬게 두면, 눈에 띄지 않게 불어납니다. 기다림이 일을 하는 시간입니다. 손이 할 수 없는 것을 시간이 맡고, 시간조차도 결국 은혜의 방식에 기대어 움직이는구나 싶습니다.

불을 올리면 냄비가 낮은 목소리로 끓기 시작합니다. 뚜껑이 살짝 들썩이며 속사람의 온기가 올라옵니다. 한 번 더 불을 줄이고, 뜸을 들이는 동안 소리조차 얌전해집니다. 말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 말한 뒤에야 찾아오는, 속으로 데워지는 침묵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 침묵이야말로 말의 뜻을 완성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쌀알처럼 모여 사는 것 같습니다. 이름 하나하나가 모서리를 지니고, 기쁨과 서운함이 서로 다른 결을 지닙니다. 뜨거운 물에 함께 눕혀질 때, 각자의 단단함이 조금씩 풀립니다. 한 그릇이 많은 들판을 품듯, 한 상 위에 각자의 날들이 따뜻하게 어깨를 붙입니다.

김이 오르기 시작하면 마음도 같이 부풀어 오릅니다. 완벽보다 충분함이 먼저라고, 오늘은 그 정도면 된다고, 밥 냄새가 일상의 기준을 다시 세워주는 듯합니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이 이토록 구체적일 수 있음을, 식탁 앞에서 새삼 알게 되십니다.

이런 아침의 기도는 길지 않습니다. 젖은 손가락끝, 얇게 피어오르는 김, “오늘도 이렇게…” 하고 남겨둔 여백이 전부일 때가 많습니다. 말을 잇기보다 쉼이 먼저 앉아 있고, 그 쉼이 하나님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숟가락을 놓기 전, 마음의 물빛이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실지요. 억지로 문지르지 않았는데도 투명해진 것들, 붙잡지 않았는데도 가까워진 것들이 있습니다. 물속에서 서로 닿아 있던 시간의 공이겠지요. 부드러움이 때로는 가장 힘센 손길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개를 듭니다.

저녁이 되면 다시 먼지가 내려앉듯 피로가 올 것입니다. 그때도 오늘의 물을 기억하게 되십니다. 한 번의 맑음으로 평생이 빛나지는 않지만, 하루의 그릇을 하루의 물로 씻는 일이 우리에게는 충분한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만나가 아침마다 새로웠듯, 자그마한 자비가 날마다 새 얼굴로 찾아오는 법입니다.

작은 부엌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조용한 손목의 움직임과 들숨의 간격, 김이 서리는 공기의 온도를 헤아리시는 분입니다. 성급히 재촉하지 않으시고, 세상이 끓어넘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불 세기를 지켜주십니다.

오늘의 시작은 대접 속 작은 흰빛 한 줌이었습니다. 그 빛을 마음에 옮겨 담고 하루를 걸어가보면, 서로를 먹이는 시간이 곳곳에서 이어집니다. 남김이 아니라 나눔에서 풍족함이 난다는 것을, 따뜻한 한 그릇이 조용히 증언합니다. 그렇게 충분한 하루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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