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2월 20일 07시 01분 발행
아침 장바구니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섰습니다. 문이 닫히자마자 불빛이 차분히 비치고, 거울이 제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처음엔 반짝이는 것 같았는데, 고개를 살짝 기울이니 얇게 남은 손자국들이 빛을 받아 떠올랐습니다. 작고 둥근 지문, 미끄러진 손바닥의 결, 누군가 급히 기댔던 흔적이 얇은 안개처럼 겹겹이 얹혀 있었습니다.
이곳을 오가는 이웃들이 남긴 하루의 모서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등교길을 재촉하던 아이 손, 밤늦게 귀가해 숨을 고르던 청년의 손, 양손 가득 장을 보고 잠깐 기대어 선 어르신의 손. 거울은 그 순간들을 지우지 못하고 조금씩 기억합니다. 각도를 바꾸어야만 드러나는 자국이라서 더 애틋했습니다. 잘 정리한 마음도 어느 빛 앞에서는 문득 윤곽을 드러내곤 하니까요. 내 말의 모난 부분, 마음에 남은 미안함, 아직 말로 풀지 못한 서운함이 이렇게 얇게 비쳐 나오는 때가 있지요.
손자국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부끄럽기보다 고마움이 먼저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잠깐 기대었기에 쓰러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흔적은 어쩌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버티어 낸 시간의 표식인지도 모릅니다. 자국이 남았다는 건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하고, 지나가게 해 주신 손길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아침마다 엘리베이터를 닦는 관리인 어르신을 떠올렸습니다. 작은 분무기와 부드러운 천을 들고 오셔서 한참을 정성 들여 문지르시지요. 닦고 나면 공간이 한결 밝아집니다. 금세 또 누군가의 손이 닿을 걸 알면서도, 어르신은 다음 사람을 위해 오늘의 맑음을 선물처럼 놓고 가십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은혜가 꼭 그렇게 작고 조용하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꾸짖기보다 어루만지고, 없던 일로 하자 말하기보다 걸음을 가볍게 해 주는 손길. 성경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이사야 49:16)고 말해 주지요. 우리의 흔적이 지워질 때에도, 그분의 기억 속 우리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약속처럼 들립니다.
어떤 기억은 잘 닦이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하루를 무겁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 위에 더 굵은 색을 덧칠한다고 해서 가벼워지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빛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얼룩보다 먼저 사람이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선이 맞닿는 잠깐의 순간처럼요. 서로의 눈빛이 닿는 사이, 문이 열리고 각자의 층에서 발걸음이 흩어집니다. 우리는 그 짧은 공존의 틈에서 서로에게 투명한 장소가 되어 줍니다. 마음을 내어 보일 만큼 길지도, 완전히 숨길 만큼 짧지도 않은 간격. 그 사이에 남기는 손길이 상처가 아니라 온기로 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고요히 일어납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을 때, 제 손도 모르게 벽을 살짝 짚고 나왔습니다. 한 줌의 체온이 차가운 표면을 건너가고, 곧 또 다른 누군가의 체온이 겹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어르신의 부드러운 천이 그 열을 지워 갈 것입니다. 지워진다 해도, 우리가 서로를 잠깐 붙잡아 준 사실은 어딘가에 남습니다. 닦인 자리의 맑음이 다음 사람의 하루를 조금 가볍게 하듯이요.
오늘 누군가는 또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숨을 고를 겁니다. 얇게 남은 손자국 사이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 문이 열리면 각자의 층으로 걸어 나가겠지요. 때로는 흔적이 먼저 보이고, 때로는 얼굴이 먼저 보입니다. 어느 쪽이든 빛은 거기 머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남기는 작은 흔적이 누군가를 살짝 살려 내고, 닦여 비워진 투명함이 또 다른 이를 받아 주는 공간이 된다면, 그것으로 오늘은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고마움이, 문 사이 얇은 틈 어디쯤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