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5월 19일 07시 01분 발행
해가 지기 전 옥상 문을 열면, 낮 동안 달궈졌던 콘크리트가 서서히 식는 숨을 내쉬는 듯합니다. 환풍기에서 흘러나오는 미지근한 공기 사이로, 텃밭 상자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서리마다 작은 이름표가 꽂혀 있고, 묘목들 옆에는 대나무 지지대가 조심스럽게 묶여 있습니다. 오래된 물뿌리개를 기울이면 굵은 물방울이 첫 잎 위에서 둥글게 맺혔다가, 조용히 흙으로 스며듭니다. 그 순간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귀를 가까이 대면 삶이 흙 속으로 내려가는 결심 같은 감촉이 전해집니다.
오늘 하루는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돌아보면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빈 그릇처럼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을 아껴서인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여서인지, 이유를 딱 짚어내기 어렵습니다. 옥상에 올라오면, 그 빈자리가 생각보다 나쁜 것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어 있는 곳으로 스며드는 것이 물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작은 밭이 가르쳐줍니다. 기다림, 체념 같지 않은 포기, 아직 모르는 내일의 온도 같은 것들이 빈자리로 들어옵니다.
민트 잎을 살짝 건드리면 손끝에 향이 묻습니다. 오이 덩굴의 어린 촉수는 여전히 허공을 더듬고, 토마토 줄기 옆 흙은 낮 동안 말라 조금 갈라졌지만, 그 틈새 아래에는 흰 뿌리가 미세한 실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변한 게 없어 보여도, 지난주 다섯 장이던 잎은 어느새 여섯 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복음서의 한 구절이 불려 옵니다. “밤낮 자고 깨는 동안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막 4:27). 알지 못함이 꼭 빈곤은 아니구나, 알지 못한다는 그늘 속에서도 자람은 멈추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이 조용히 머뭅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해서, 바로 어제와 오늘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를 찾지 못해도, 확인되지 않는 어떤 선함이 곳곳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서먹해진 관계의 흙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대신 작은 갈퀴로 표면을 가볍게 긁듯, 내 마음의 단단함을 조금 느슨하게 놓아보는 순간들이 생깁니다. 말이 채워지지 않는 자리에서 눈빛이 먼저 길을 열기도 하고, ‘다음에’로 미뤄두었던 고마움이 길고 가벼운 메시지로 옮겨 앉기도 합니다. 크지 않은 움직임들이 쌓여, 마침내 뿌리가 다다를 수 없던 곳까지 물이 번져갑니다.
저녁 빛이 기울면 잎맥이 더 또렷해집니다. 역광 속에서 식물의 속살이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의 하루도 이렇게 끝자락에서야 진실해집니다. 애써 숨기려던 마음이 아니라, 숨길 것조차 없는 피곤과 안도, 아직 말로 옮기지 못한 기도 아닌 기도의 조각이 묵묵히 빛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아신다는 사실이 별 문장도 없이 가슴에 들어옵니다. ‘지금은 모르는 사이의 자람’이, 그분 안에서는 이미 기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평안이 따라옵니다.
물뿌리개를 세워두고 난 뒤, 상자 가장자리에 묻은 흙을 털어냅니다. 발끝에 모래가 살짝 끼고, 손바닥에는 민트 향이 오래 머뭅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설명되지 않는 자람이 진행되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크지 않지만 분명한, 물기가 스며드는 속도로 일어나는 변화. 그 느린 속도 덕분에 잃지 않을 얼굴과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한 칸씩 좁아지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넓어집니다. 굳이 답을 내리지 않아도, 이 저녁의 향이 한동안 길을 밝혀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