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3일 07시 01분 발행
오후의 기온이 살짝 내려앉은 시간,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섞여 은근한 향을 건네더군요. 입구 옆 기계에서 번호표를 뽑으니, 얇은 종이 위에 붉은 숫자가 가볍게 눌려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숫자 하나가 바뀔 때마다 작은 ‘띠링’ 소리가 공기 속에서 짧게 울렸습니다. 누군가는 소포 상자에 테이프를 바르고, 누군가는 송금 신청서를 천천히 채웠습니다. 카운터 너머 유리 칸막이 앞에서 서류를 내밀던 손들이 차례로 되돌아와 품에 무언가를 안았습니다. 이곳의 시간은 급하지 않았고, 대신 분명했습니다.
기다림은 언제나 무언가를 가지런히 합니다. 생각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번호표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어릴 적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식탁 위에 봉투와 엽서를 펴놓고 앉아 계셨지요. 주소를 적을 때마다 글씨가 조금 더 또박또박해지고, 우표의 잔잔한 톱니가 종이 위에 작은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날의 소식은 아직 말이 되기 전의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봉투 속으로 들어가고, 봉투가 누군가의 길로 떠났습니다. 문 밖의 길을 몰라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미 손을 떠난 소식은 자기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표정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보내기 전과 보낸 후의 얼굴이 조금 달랐습니다.
우체국에 앉아 있노라면, 기도라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기도가 꼭 어떤 정답을 만드는 일은 아닌데, 오래 품고 있던 마음을 봉투에 담듯 고요히 모으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적어도 내 마음의 발신 주소를 분명히 적는 일, 누구에게 보내는지의 수신인을 잊지 않는 일. 언젠가 시편은 우리의 길을 주님께 맡기는 삶을 노래합니다(시편 37:5). 맡긴다는 것은, 결과를 몰라서 두려운 채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길 위로 올려놓는 일과 가깝습니다. 오늘 반드시 도착 확인 문자가 오지 않아도, 이미 소식은 출발했고, 그 길에서 보호받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조금 정리되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는 미뤄둔 소식이 많습니다. 고마웠다고 말하려다 때를 놓친 감사, 설명 대신 미안하다는 말 한 줄이면 충분했을 마음, 잘 지내느냐는 짧은 안부. 마음의 서랍 속에 오래 접어두면 종이처럼 눅눅해지지요. 우체국의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그 말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보낼지 한 사람씩 떠오르고, 그 이름 옆에 작은 사연이 따라붙습니다. 적당한 봉투를 고르고,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접어서 넣는 일. 그 소박한 손길이 관계를 다시 꿰매는 실이 되곤 합니다.
제 차례가 되어 창구로 다가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직원의 손이 도장을 찍는 소리가 톡 하고 울렸습니다. 전산 화면 어딘가에 내 소식이 입력되는 동안, 우표 무늬를 한 번 더 훑어 보았습니다. 제 손을 떠난 봉투는 더 이상 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제는 받는 이의 눈과 손, 그리고 그날의 하늘과 기온, 그 집 현관 앞의 작은 발자국들까지, 모든 것과 어울려 도착할 것입니다.
우체국을 나와 걸음을 옮기는데, 손이 가벼웠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맡겨진 것입니다. 번호표는 종이조각이 되어 주머니 안에서 조용히 접혔고, 마음의 번호표도 몇 칸 앞당겨진 듯했습니다. 아직 응답은 없지만, 그 침묵에도 방향이 생겼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작은 소식을 띄웠다는 사실, 그 시작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들려올 ‘띠링’ 같은 소리를 조용히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 사이, 우리의 하루는 이미 길 위에서 자라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