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19일 07시 02분 발행
동네 우체국에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구석이 있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번호표 한 장이 손에 얹히고, 낮은 천장과 형광등 아래로 작은 저울과 봉투, 스카치테이프의 반짝임이 보입니다. 창구 뒤에서 들리는 건 잔기침이나 의자 끄는 소리보다 더 또렷한, 도장이 종이 위를 누를 때의 짧은 숨소리입니다. 탁, 하고 찍히는 그 소리. 누군가의 마음이 오늘 글자로 몸을 얻고, 길을 떠난다는 신호처럼 들립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편지가 가진 운명을 생각했습니다. 봉투가 저울에 올려지는 순간까지는 보내는 이의 손길이 닿지만, 그 다음부터는 보이지 않는 통로와 사람들의 손을 건너야 합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세상의 배낭 속을 거쳐 도착에 이릅니다. 보내고 난 뒤에야 주소를 다시 떠올리고, 혹시 숫자 하나가 틀린 건 아닐지, 글씨가 너무 작아지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뒤늦게 서성입니다. 사랑과 기도도 그와 같아 보였습니다. 우리 안에서 오래 써내려간 문장들이 어느 날 손을 떠나,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나 상대의 하루로 들어가는 일. 그 사이의 시간, 즉 어디에도 닿지 않은 듯한 공백이 우리에게 가장 길게 느껴집니다.
전도서의 말처럼, 모든 것을 때에 아름답게 하셨다는 문장이 오늘 우체국의 소인처럼 마음에 찍혔습니다(전 3:11). 급히 보내야 할 것이 있고, 느리게 도는 계절처럼 천천히 가야 닿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랑은 빠른 등기로, 어떤 화해는 두꺼운 완충재를 감아 충격을 견딜 수 있게 보내야 하는 것처럼요. 기다림의 포장은 가볍지 않지만, 그 무게가 있어야 비로소 안전하게 도착하는 마음들이 있는 듯합니다.
제 앞에 서 있던 중년의 여성은 작은 상자 위에 얇은 메모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부디 무사히’라는 여섯 글자. 창구 직원은 테이프를 한 겹 더 감아주며 빙긋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소인이 되었습니다. 메모에는 계절의 과일향이 스며 있었습니다. 택배 박스마다 스티커가 붙어 오다 가다 떨어지듯, 우리의 말들도 길 위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만나 조금 더 안전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지나가는 노래처럼, 말과 침묵이 묶여 전달됩니다.
오후가 저물 무렵, 수거함이 열리고, 회색 손수레에 봉투들이 천천히 옮겨 담겼습니다. 같은 모양의 봉투들이지만, 각기 다른 사연의 체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저마다 하루의 끝에서 마음 한 장을 접어 넣곤 합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 너무 늦게 떠오른 감사, 아직 다 낫지 않은 서운함. 어떤 것은 오늘 띄우고, 어떤 것은 조금 더 품에 두게 됩니다. 보낼 때가 오면 알게 되리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확신이 가만히 자리합니다.
돌아오는 길, 손바닥에 찍혀 있던 빨간 도장의 잔향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이라는 종이 위에 하나님이 조용히 찍어주신 승인 표처럼 느껴졌습니다. 멈추어 있던 일들이 움직이고, 당도하지 못한 마음들이 길을 찾는 낮은 신호. 저도 아직 붙이지 못한 말 하나를 마음속 우편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내일 더 단정한 글씨로 적을 수 있기를 바라며요. 도착은 언제나 한 번의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니, 늦게 오는 것들의 숨이 오히려 든든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의 작은 우체국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의 메모 한 장이 우리를 덮어주고, 누군가의 미소 하나가 더 견고한 포장이 되어줍니다. 그 사이사이, 보이지 않게 찍히는 수많은 소인들. 그 소리들이야말로 우리를 계속 걸어가게 하는 박동처럼 느껴졌습니다. 도착에 가까워지는 길목마다, 마음이 조용히 붉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