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앞, 얇은 봉투 하나

📅 2026년 01월 25일 07시 02분 발행

저녁빛이 복도 바닥에 길게 눕던 시간, 엘리베이터 옆 우편함들이 조용히 제 입을 열고 있었습니다. 작은 열쇠를 돌리니 철문이 아래로 살짝 내려오고, 색이 유난한 광고지들이 우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 한가운데, 접힌 자국이 얇게 남아 있는 흰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손끝을 거쳐 온 종이였고, 제게로 오는 길을 묵묵히 견딘 흔적들이 표면에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 봉투를 집어 드는 순간, 속도를 줄이게 됩니다. 종이가 상하지 않도록 쥐는 정도도, 접힌 곳을 펴는 손마디의 힘도 조금 달라집니다. 누군가가 제 존재를 향해 건넨 조심스러움이 거기에 스며 있는 것 같아, 저도 그만큼의 단정함으로 받게 됩니다. 이런 태도는 별것 아니지만, 하루의 굵은 소리들 사이에서 마음이 다시 한 점으로 모이는 방식이 되곤 합니다.

어릴 적 교실에서 출석부를 넘기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립니다. 제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던 그 짧은 순간, 손끝이 저도 모르게 선을 그리며 긴장을 닦아내곤 했지요. 병원에서 번호표가 가까워질 때, 대합실 공기가 갑자기 또렷해지는 일도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틈에서 이름 하나가 불릴 때, 사람은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낡지 않은 언어로 확인하게 됩니다.

광고지들이 전하는 말도 필요하겠지요. 각자의 일터에서 내어보내는 노력의 목소리일 테니까요. 다만 그 사이에서 제 이름이 적힌 봉투 하나가 손에 들어올 때, 소리가 잦아들며 마음이 깊은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유명한 문구나 큰 약속이 아니라, 불려진 이름 하나로 충분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신앙은 어쩌면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높고 큰 확성기보다, 이름을 조용히 부르는 숨결처럼 가까이 오곤 하지요. 이사야의 말처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라는 문장이 마음 한쪽에서 작은 등불처럼 켜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 불빛은 밝음을 과시하지 않고, 발밑을 알아볼 만큼만 머물러 주어 안심이 됩니다.

우편함 철문 안쪽에 남은 종잇조각 몇 장을 다시 밀어 넣으면서, 오늘 제가 자신과 세상을 대하던 태도를 떠올려 봅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불러본 일이 있었는지, 그 사람에게 향하던 말의 끝을 둥글게 마무리했는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단정해지는 법을, 이런 사소한 움직임으로 배우게 됩니다.

집집이 문턱을 드나드는 발소리가 한 번씩 지나가고, 복도 등을 켠 노란빛이 손등에 얹힙니다. 누군가는 방금 받은 택배를 끌어들이고, 누군가는 고무장갑을 벗으며 어깨를 펴겠지요. 사람들 사이로 흘러가는 종류의 저녁. 그 한가운데서 봉투 하나를 천천히 가방에 넣는 일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내 편으로 데려오는 작고 온순한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가끔 봉투를 바로 열지 않습니다. 내용보다 먼저 마음에 남는 건, 제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선 몇 초의 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하루에 묻어온 자잘한 실패와 마른 근심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며 기척을 낮춥니다. 불려진 이름이 저를 부끄러움 없이 서게 해주는 듯합니다.

철문을 닫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복도의 공기가 금세 원래의 흐름으로 되돌아갑니다. 별일 없던 것처럼 보이는 저녁 속에서, 저를 찾아온 호명 하나를 조용히 품습니다. 그 부름이 오늘의 저를 다시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말없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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