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3월 26일 07시 00분 발행
밤 아홉 시, 아파트 분리수거장 형광등이 낮게 웅웅거립니다. 겨울까지는 아니지만 공기가 마르고, 손끝엔 물기가 조금 시립니다. 씻어 가져온 유리병들을 박스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니, 서로 닿는 소리만은 의외로 맑습니다. 병 하나를 기울이면, 안쪽 깊은 곳에서 아직 남아 있는 향이 잠깐 새어 나옵니다. 달콤하거나, 씁쓸하거나, 이름을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들입니다.
라벨을 떼려고 미지근한 물수건을 둘러 대니, 종이가 조금 불더니 스르르 벗겨집니다. 그래도 끈끈이는 남습니다. 손톱으로 긁고, 남은 자리는 다시 문질러 봅니다. 금세 사라질 것 같은데, 끝내 얇은 막이 고집을 부립니다. 희미한 윤곽이 여전히 그 자리를 주장합니다.
문득 마음에도 그런 라벨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직함이나 역할로 불리던 날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어느새 스스로에게 붙인 표들, 때로는 실패가 남긴 낙인 같은 단어들. 다 지난 일이고, 이제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손끝으로 만지면 아직 끈적임이 전해지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조용히 지워냈다고 여겼는데, 빛이 비스듬히 스치면 그 자리만 다른 결을 드러내는 표면처럼요.
라벨을 떼어낸 병을 들어 보니, 속이 잘 보입니다. 내용물이 있을 때는 몰랐던 스크래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흠집은 빛을 어둡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빛이 그 자리에서 잠깐 쉬어 가며 반짝입니다. 투명하다는 건, 상처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빛을 막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마음 한쪽에 무겁던 문장 몇 개가 있었습니다. “왜 그때는 더 잘하지 못했나.” “내가 빠지면 일이 멈추지 않을까.” “어디까지가 나의 몫인가.” 병을 비우듯 천천히 내려놓아 보니, 소리가 납니다. 동글고 청아한 유리의 울림이 공기를 가르듯, 그 말들도 어둠 속을 지나 멀어지는 기척을 남깁니다. 완벽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멀어지는 방향이 분명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부를 때, 라벨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목소리는 설명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단지 ‘당신’을 불러냅니다. 성경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오래전 말씀이지만, 오늘 저녁 분리수거장 형광등 아래서 새로 들리는 문장입니다. 라벨이 지워지지 않아 답답한 날에도, 이름을 부르시는 분의 호흡은 변하지 않는다고 속삭여주는 듯합니다.
유리병을 분류함에 조심스레 넣고 나면, 빈 공간이 남습니다. 빈자리는 공허가 아니라, 다음을 위한 자리라는 것을 병이 먼저 압니다. 다시 채워지거나, 녹아서 전혀 다른 그릇이 될 운명을 이미 품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빈자리도 그런 뜻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비워졌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비워졌기에 생겨난 가능성 때문에 잠잠해지는 밤이 있습니다.
형광등 불빛 아래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다시 짧아집니다. 오늘 하루 고단했던 어깨도, 말없이 감당한 마음의 근육도, 제 자리를 찾아 내려앉습니다. 대단한 변화가 당장 일어나지 않아도, 유리병이 서로 가볍게 인사하며 닿는 소리처럼, 조용한 안부가 가슴을 건드립니다. ‘오늘 여기까지 잘 왔다’는 단정한 문장이, 숨처럼 가볍게 마음 안을 지나갑니다.
발걸음을 돌리며 다시 한 번 손끝을 바라봅니다. 끈끈이가 조금 남아 있지만, 그 또한 시간과 물과 빛을 만나면 사라질 것입니다. 때로는 긁지 않아도, 기다리면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사랑 앞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라벨이 다 지워지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투명한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만큼의 빛을 통과시킨다는 사실이 오늘 밤을 부드럽게 덮습니다.
멀리서 아이 웃음이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한 번 열렸다 닫힙니다. 도시의 밤은 여전히 바쁘지만, 마음 속에는 다른 속도의 시간이 흐릅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도착하는 시간, 눈에 띄지 않아도 단단히 쌓이는 믿음의 결. 빈 병들이 차분히 잠들 자리를 찾아 누운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오늘의 빛을 조용히 거두어 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