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09일 07시 01분 발행
도심 구청 지하의 작은 분실물 센터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형광등 아래, 은색 선반들이 가지런했고, 그 위에는 각자의 사연을 잃어버린 채 놓인 물건들이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한쪽이 헤어진 장갑, 손잡이가 휘어진 우산, 표지가 젖어 곧게 마르지 않은 책, 사진이 바랜 학생증, 울린 흔적이 선명한 작은 휴대전화. 직원은 물건마다 얇은 종이띠를 붙여 두었습니다. 발견된 날짜, 장소, 그리고 짧은 메모. 그 메모는 꼭 누군가의 하루에 대한 다정한 증언처럼 보였습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다급한 걸음이 들어왔습니다. 주머니를 뒤지며 사정을 설명하는 얼굴, 연필로 서류를 쓰는 손, 그리고 선반에서 물건이 주인을 찾는 순간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돌아온 것과 그를 맞는 이의 눈빛 사이에, 잠깐의 쑥스러움과 안도가 스며 있었습니다. 한 번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은, 같은 물건이어도 다른 마음으로 쥐어 보게 되는 듯했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하루를 살며 우리도 여러 작은 것들을 놓치곤 하기 때문입니다. 급히 돌아서다 말의 온기를 잃고, 서둘러 건넨 판단 속에 귀 기울임을 잃고, 마음이 훅 꺼지는 순간 용기를 잃습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보이지 않는 선반이 있어, 잃어버린 것들이 이름표를 달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우리가 제때 찾아오지 못해도, 누군가는 그것들을 치우지 않고 지켜 주는 듯한 느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눅 15:20) 그 구절이 떠오르면,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낡은 의자처럼 든든해 보입니다.
그날 본 종이띠들을 기억합니다. ‘버스 뒷자리’, ‘비 오는 오후’, ‘카운터 옆’. 짧은 말들 사이로, 바빴던 마음과 놓쳐버린 숨이 읽혔습니다. 우리 삶의 메모에도 비슷한 글씨가 적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피곤했음’, ‘말을 고치기엔 늦었음’, ‘눈물이 예고 없이 옴’. 그러다 어느 저녁,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마음 한쪽에서 미안함이 다려지듯 펴지는 때가 있습니다. 작은 통화 한 번, 짧은 문장 하나가 길게 엉켜 있던 실마리를 풀어 주는 것처럼요. 그럴 때, 누군가 우리보다 먼저 그 선반을 지켜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가 져서 센터 불이 꺼져도 경비등 하나는 남아 선반을 어둠에서 구분해 줍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그런 불빛 하나가 있는 듯합니다. 내일 우리가 다시 찾아올 길을 잃지 않도록, 너무 늦었다고 스스로 단정하지 않도록, 작은 빛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름을 불러 주는 목소리는 다그치지 않고, 다만 확인하듯 부드럽습니다. 맞느냐고, 이게 당신의 것이었느냐고. 그리고 돌아온 것들을 손에 쥐는 순간, 길에서 묻은 먼지가 이상하게 가벼워집니다.
오늘을 지나며,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에 마음속 선반을 한번 스치는 기억이 있습니다. 잃었던 웃음 하나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고, 오래 미루었던 감사가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것들이 다시 내 곁에 있을 때, 같은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늘 조금씩 잃고, 또 조금씩 되찾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이름표가 붙은 기다림들 사이로, 내일의 걸음이 조심스럽게 놓이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