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톱니가 알려준 오후

📅 2025년 09월 28일 07시 01분 발행

골목 끝, 간판 글씨가 반쯤 지워진 시계수리점에 들렀습니다. 문종 소리가 가늘게 울리고, 좁은 유리 진열장 안에 오래된 손목시계들이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카운터 뒤, 둥근 스탠드 조명이 밝힌 작은 세계가 있었습니다. 금속 조각들이 별자리처럼 흩어져 있고, 깨알만 한 나사들이 하얀 천 위에서 반짝였습니다. 노 루페를 눈에 낀 시계공이 제 시간을 받아 들여 손끝으로 무게를 가늠했습니다. 저는 숨을 낮추고 그 손놀림을 지켜보았습니다.

시계공은 한참을 귀를 기울였습니다. 틱, 틱, 틱. 무심하게 흘러가는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호흡처럼 느린 리듬이었습니다. “소리는 괜찮습니다. 다만 조금 빨랐네요.” 그는 그 말과 함께 얇은 드라이버를 살짝 돌렸습니다. 작은 톱니 하나가 제자리를 찾자, 리듬이 미세하게 달라졌습니다. 마치 어긋난 걸음이 다시 보폭을 맞추는 순간 같았습니다.

밖의 시간은 늘 큽니다. 전광판 숫자가 뛰고, 일정표가 달리고, 할 일 목록이 셀 수 없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작은 가게 안에서 시간은 손끝으로 다루는 것처럼 섬세했습니다. 오래 멈춘 것도, 너무 서두르는 것도 여기서는 한 번 숨을 고르듯 조율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제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주어진 시간을 더 곱게 듣는 귀였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오래된 시계를 몰래 차고 나간 날이 떠올랐습니다. 손목에 닿는 가죽의 낡은 질감, 팔목에서 전해지던 작은 진동. 시험을 보던 그날, 문제의 어려움보다 손목에서 들려오던 단정한 소리에 더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때의 제가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압니다. 누군가의 시간을 함께 들을 때, 마음은 덜 흔들린다는 것을요.

문득 시편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날수 세는 법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숫자를 세는 일은 빠르지만, 날수를 세는 일은 느립니다. 숫자는 위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지만, 날수는 삶의 체온을 한 줄씩 적셔 가며 채워집니다. 지혜는 어쩌면, 시간을 다그치지 않고 귀 기울이는 데서 싹틀지도 모릅니다.

시계공은 가장 작은 나사에 아주 조금의 윤활유를 떨어뜨렸습니다. 저는 그 한 방울이 얼마나 많은 마찰을 견디게 하는지, 얼마나 많은 소음을 잠재우는지 새삼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그런 작은 방울 하나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애써 고치려 들지 않아도, 언젠가 어긋난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있어 주는 손길, 일정과 계산 사이를 미세하게 풀어 주는 한 마디의 숨. 그게 사람 사이에 흐르는 윤활 같았습니다.

가끔은 내 안의 초침이 누구보다 앞서 뛰어갑니다. 다른 때는 오래 지체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 순간을 고장으로만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다. 시계공의 테이블 위에서 보았듯, 조정은 대개 미세했습니다. 큰 망치가 아니라 작은 드라이버, 큰 소리 대신 천천한 귀가 일을 해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 앞에서 말을 덜하고 마음을 더 가까이 가져가는 시간이 소중해집니다. 타인의 하루가 들려주는 틱, 틱, 틱을 함께 들어 주는 일. 그저 함께 듣다 보면, 내 안의 리듬도 어느새 단정해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가게를 나서며 다시 손목시계를 귀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그 작은 진동이 맥박처럼 따뜻했습니다. 오늘의 시간도 저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히가 아니라 성실하게, 빠르게가 아니라 또렷하게. 시계공의 손끝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하루를 밀어붙이는 힘보다 하루를 들어 올리는 귀가 더 오래 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벼운 소음이 가라앉고, 틱과 틱 사이의 숨이 조용히 넓어지는 오후였습니다. 그 사이에, 말없이 함께 고르는 사랑이 자리할 곳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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