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바늘귀

📅 2025년 08월 18일 07시 02분 발행

저녁 식탁을 정리한 뒤 작은 스탠드 불을 켜면, 방 안이 속삭이듯 낮아집니다. 실타래에서 한 가닥을 풀어 바늘귀에 데려가려면 손끝이 먼저 고요해져야 합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눈을 가늘게 모으고, 바늘의 얇은 틈새에 실이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통과하는 그 순간, 오늘의 어수선함도 어딘가로 건너가는 듯합니다.

헤진 양말을 뒤집어 작은 구멍을 살펴봅니다. 금세 새것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따뜻함이 스며든 자리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습니다. 낡아서 쓸모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많이 함께 걸어줘서 얇아진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의 하루도 그러했습니다. 크게 찢어진 사건은 없었지만, 말 한마디가 지나가며 실밥을 잡아당긴 자리들, 네모난 일정 속에서 자꾸 삐져나온 숨결들, 보이지 않는 구멍이 몇 군데 생겼다는 것을 저녁이 되어서야 알아차립니다.

바늘을 들고 첫 땀을 떠올립니다. 너무 촘촘하면 천이 당기고, 너무 느슨하면 금세 벌어져 버립니다. 적당한 간격, 숨이 드나들 틈이 있어야 오래 갑니다. 관계도 그랬습니다. 가까이 있으되, 서로의 온기가 지나갈 작은 빈칸을 남겨두는 일. 말과 침묵 사이, 기대와 자유 사이에 남겨둔 간격이 하루를 견디게 했다는 것을, 바늘질을 하며 몸이 먼저 압니다.

안쪽에서 바깥으로, 바깥에서 다시 안쪽으로 실을 보냅니다. 바늘이 천을 통과하는 그 결을 따라 마음이 오갑니다. 낮의 장면들이 떠오르다가, 스르르 풀리고, 때로는 한 땀 더 얹히며 자리 잡습니다. 바늘구멍을 지나는 실 끝에서 작은 스침이 느껴질 때, 기도도 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화려한 문장이 아니어도, 조용한 반복 속에서 조금씩 모양이 나옵니다.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3)라는 문장이 스탠드 불빛에 조용히 비칩니다. 누군가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상처까지 헤아리며, 이 밤의 바늘길을 함께 걷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듭을 지을 때가 오면 손끝에 미세한 결단이 스칩니다. 더 묶을지, 여기서 멈출지. 성급히 힘을 주면 매듭이 도드라져 발바닥을 찌를 테고, 너무 약하면 금세 풀릴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한 장을 덮는 일도 비슷합니다. 더 말하고 싶은 마음,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지금의 온도에서 묶는 매듭이 내일의 발걸음을 덜 아프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매듭은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이야말로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다는 증표가 됩니다.

뒤집어 다시 살펴보니, 바깥 면에는 단정한 선이 이어져 있고, 안쪽에는 작은 울음 같은 실매듭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겉에서 보이는 선과 안쪽에 감춘 매듭이 나란히 있겠지요. 서로의 안쪽 매듭은 다 보지 못해도, 그 매듭을 묶느라 보냈을 시간과 조용한 숨을 상상하게 됩니다. 상상은 때때로 이해보다 따뜻한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양말을 다시 발에 신으니, 기운 자리의 감촉이 희미하게 닿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미세한 도톰함이 몸을 깨웁니다. 약함이 지나간 자리에 강인함이 자리 잡는다는 것은 이런 모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해서 편안한 것이 아니라, 손이 닿은 곳이라서 안심이 되는 편안함. 오늘의 마음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스탠드 불을 끄면 방 안의 어둠이 한 겹 더 두꺼워지지만, 창문 밖의 밤공기는 오래도록 식탁 위에 남은 온기를 알아챕니다. 바늘과 실, 작은 매듭 하나.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생겨난 이 조용한 회복이 내일의 우리를 어떻게 붙들어 줄지, 그 가능성이 작은 서랍 속처럼 고요히 닫히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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