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조율

📅 2026년 08월 09일 07시 01분 발행

수요 모임이 흩어진 저녁, 본당에 불이 반쯤 남았을 때 조율사가 왔습니다. 뚜껑이 열린 피아노 속, 가느다란 스탠드 불빛 아래 현들이 금빛 선처럼 누워 있었지요. 그는 작은 가죽 망치를 들고 A음을 가볍게 눌렀습니다. 숨을 길게 들이쉬는 것 같은 울림이 퍼지고, 그의 귀가 그 울림에 오래 기대었습니다. 손보다 귀가 먼저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였지요.

현 사이에 얇은 펠트를 끼우고 튜닝 레버를 아주 조금씩 돌릴 때, 미세한 떨림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겼습니다. 그는 기다렸습니다. 소리가 스스로 자리 잡는 시간을 아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 법을 배운 듯했습니다. 곁에 서서 보고 있으니, 음악의 반은 침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없이 버티는 그 순간이야말로 음이 제 자리를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도 그처럼 음이 어긋나곤 합니다. 큰 잘못보다, 작게 미끄러진 마음이 더 오래 귀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높아진 톤, 건너뛴 인사, 미루어 둔 용서. 보이지 않는 뒤꿈치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걸음은 괜찮다며 걷지만 속으로는 자꾸 발끝이 신경 쓰입니다.

조율사는 말수가 적었습니다. 대신 그는 오래 들었습니다. 손끝이 아니라 귀가 답을 알려준다고,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지시는 방식도 종종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힘주어 당기지 않으시고, 먼저 들으시고, 우리가 스스로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시는 방식. 시편은, 멈춘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지는 순간이 온다고 말합니다(시편 46:10).

조율이 끝무렵으로 갈수록, 화음은 개별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하늘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음이라도 각기 다른 두께와 성질이 만나 서로에게 기댔습니다. 삶의 사람들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모두 같은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서로의 어긋남을 조금씩 덜어 주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 만남 사이를 지키는 침묵이, 말보다 더 깊은 이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날 마지막 건반을 눌렀을 때, 소리가 오래 남았습니다. 사라지는 듯 머무는 그 여운 속에서 마음도 한 음 낮아졌습니다. 불을 끄고 나오는 조율사의 뒷모습은 가벼웠고, 본당의 공기에는 새로 맞춘 음의 질서가 누워 있었습니다. 문을 닫으며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조율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고요. 계절이 바뀌고 습도가 달라지면, 다시 어긋나고, 그래서 또 들을 이유가 생긴다는 것.

우리 마음도 그럴지 모릅니다. 완벽으로 고정된 하루가 아니라, 어긋남과 맞춤이 번갈아 오는 날들. 그 속에서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고, 오늘의 작은 불협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음을 기억하십니다. 그 기억이 우리를 다시 부르듯 붙잡고, 문득 어떤 조용한 시간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저녁이 그런 순간일지도요. 한때는 시끄러웠던 마음의 박동이 조금씩 고르게 이어지고, 말없이 앉아 있는 의자마저 음악의 일부가 되는 때.

누군가의 길게 남은 한숨도, 다른 이의 조심스러운 미소도, 다 다른 음색이지만 하나의 곡을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곡은 서두르지 않아서, 실패처럼 보이는 쉼표조차 제 자리입니다. 그분의 귀가 우리를 잊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오늘의 작은 불협도 내일의 음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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