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구두방의 느린 바느질

📅 2025년 12월 04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끝자락, 지붕이 낮은 작은 구두방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문을 밀자 아주 작은 종이 가볍게 울리고, 가죽 냄새가 따뜻한 난로의 공기와 섞여 코끝에 머물렀습니다. 작업대 위에는 닳은 밑창들이 겹겹이 놓여 있고, 주인장의 손은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왁스를 먹인 실이 가죽을 스칠 때마다 마른 소리가 났고, 송곳이 한 번 숨을 들이켜듯 구멍을 내면, 그 사이로 실이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손등에 세월이 얹혀 있는데, 그 움직임은 이상하게 젊고 또렷했습니다.

바닥이 얇아진 구두 한 켤레가 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발뒤꿈치 쪽이 특히 심하게 닳아 있었습니다. 같은 자리가 먼저 닳는 이유는 아마도 걸음의 습관, 무게가 자주 머물던 흔적 때문이겠지요. 사람의 마음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같은 말에 자주 다치고, 같은 시간에 더 피곤해지고, 꺼내지 못한 마음이 겹겹이 쌓여 얇아지는 자리.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하나쯤은 있겠지요.

구두장이의 바느질은 서두름이 없었습니다. 실이 구두 둘레를 한 바퀴 돌아오는 사이, 제 숨도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여기에선 시간을 이기는 기술보다, 시간을 받아들이는 손놀림이 더 커 보였습니다.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닳은 자리의 기억을 읽어가며 살려내는 일. 잘 쓰였다는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다시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 그 느린 리듬을 바라보다 보니, 오늘 하루의 소음이 조금 내려놓아졌습니다.

성경은 조용히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이사야 42:3). 구두방 한쪽에서 작은 난로 불이 적당히 숨 쉬고 있었는데, 그 불빛이 그 구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꺼지지 않도록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손을 바짝 들이대지 않아도 알아서 데워주는 온기. 마음의 가장 얇아진 부분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시는 분의 시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의 밑창에서도 작은 가루들이 떨어져 나가듯 지치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왜 이 부분만 늘 이렇지’ 하는 탄식이 먼저 나옵니다. 하지만 닳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걸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때로는 쉬어야 했고, 때로는 굳이 돌아가야 했고, 그러다 보니 편편한 데보다 모서리 쪽이 먼저 얇아졌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 자리의 사정을 알고, 급하지 않은 손길로 실을 끼워 넣어 주는 장면이 오늘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실 한 올이 지나갈 때마다 가죽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마감의 매듭이 보이지 않는 안쪽으로 숨어들자, 모양이 성급히 완벽해지려 하지 않는 정직함이 남았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붙들려 가는 중일지 모르겠습니다. 반짝 달라지는 변화가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느질이 마음 안쪽에서 이어지는 가운데, 내일의 발걸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지는 일.

수리를 마친 구두를 들고 나오는데, 발이 더 단단히 바닥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마음을 몰래 닳게 한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서운했다는 말 대신 묵혀 둔 침묵, 하지 못한 질문, 급히 덮어버린 표정들. 그 모든 곳에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온기가 남아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죽 냄새가 옅게 스민 저녁 공기 속에서,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천천히 꿰매어지고 있다는 조용한 믿음을 살짝 품어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같은 길이지만 조금 다른 발걸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정도면, 오늘은 이만 넉넉합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