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부엌의 조용한 물결

📅 2026년 02월 06일 07시 01분 발행

해가 식탁 가장자리를 벗어나며 부엌의 기온이 조금 내려갑니다. 싱크대 앞에 서면 금속의 은은한 냉기가 팔목으로 올라오고, 채반에 담긴 쌀알들이 서로 닿으며 작은 소리를 냅니다. 물을 틀어 손등으로 먼저 온기를 재보는 습관이 여전히 남아 있지요. 흐르는 물이 쌀 위로 흘러들고, 손가락으로 둥글게 천천히 젓다 보면 첫 물이 젖빛으로 변해 나갑니다. 그 빛이 탁하다고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오늘 하루의 먼지와 바쁜 마음이 함께 흘러가는 듯합니다. 두 번째 물은 조금 덜 흐리고, 세 번째쯤이면 거의 투명합니다. 그럼에도 컵 하나 바닥에 머금은 달빛처럼 은근한 뿌연 기운이 끝내 남아 있는 것이 보이곤 합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도 이런 과정을 거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마음을 들여다보면, 오늘 받은 말 한마디와 내뱉지 못한 대답들, 몸에 쌓인 무게가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첫 물처럼 금세 맑아질 수 없지요. 서운했던 표정 하나, 지나치게 서둘렀던 결정, 원하는 만큼 친절하지 못했던 순간이 물 위에 떠오르곤 합니다.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손에 잠깐 머물러 무게를 가늠해 보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천천히 저어 주면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흘러갈 것은 흘러가며, 남은 것의 결이 눈에 들어옵니다. 꼭 옳고 그름으로 가르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무엇이 내 안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일만으로도, 숨이 한 번 고르게 쉬어지는 밤이 되곤 합니다.

예전에는 쌀뜨물을 모두 버렸지만, 누군가는 그 물을 모아 화초에 준다고 했습니다. 탁함 속에도 뿌리를 도와 주는 무언가가 들어 있다고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생명을 돕는 요소를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툴렀기에 배운 말투가 있고, 아팠기에 생긴 귀가 있으며, 돌아보았기에 멈출 줄 아는 발걸음이 있습니다. 대답하지 못해 남긴 여백이, 다음 만남에서 상대의 말 끝을 붙잡아 주는 부드러움이 되기도 합니다. 흘려보낸 것들 가운데, 누군가의 내일을 살리는 한 방울이 섞여 있습니다. 탁했다고 해서 모두 잘못이 아니고, 맑다고 해서 모두 옳음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 줍니다.

저녁마다 반복되는 이 작은 의식 곁에서, 오래된 한 구절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2). 큰 설교나 눈부신 표어가 없어도, 물소리가 부엌 타일을 스치고, 손가락 사이로 미지근함이 흐르는 동안, 그 인도가 어디 멀리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의 길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오늘의 물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흐르고 있어서, 마음이 그 물가에 잠시 앉아 있는 듯합니다.

몇 번의 씻김 끝에 남은 쌀알은 서로 몸을 기댄 채 맑은 물속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 고요를 바라보다 보면, 하루 동안 제 마음이 부대낀 자리도 점차 모양을 드러냅니다. 여기에는 사과가 어울리겠구나, 저기에는 침묵이 좋겠구나, 그렇게 다짐보다 부드러운 알아차림이 생깁니다. 불을 올리면 곧 수증기가 솟고 덮개가 미세하게 떨리겠지요. 그 사이, 부엌에는 누군가 돌아올 발소리와, 그를 맞이할 한 그릇의 온기가 준비됩니다.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마음 한 켠이 있어도, 오늘의 씻김만큼은 몸에 꼭 맞는 옷처럼 편안합니다. 젖빛 물이 배수구를 돌아 사라질 때, 이 저녁이 내일의 힘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이 손끝이 기억하고 있는 듯합니다. 말없이 흐르는 물소리 위로, 조용한 숨이 한 번 내려앉고, 식탁 위에 그 숨이 천천히 따뜻해지고 있었습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