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위에 올려 둔 안부

📅 2026년 05월 13일 07시 00분 발행

오늘 낮,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낡은 번호표 통이 조용히 딸깍 소리를 내고, 창구 너머에서는 고무도장이 종종 탁,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한쪽 벽에는 오래된 우편요금표가 걸려 있고, 기다리는 의자엔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와 봉투를 문지르는 손길이 섞여 있었습니다. 제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이 봉투의 주소를 다시 한번 훑어보시더니, 작은 저울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직원이 ‘스무 그램이네요’ 하고 말하자, 할머니의 어깨가 아주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옆에서 우표를 건네받은 소년은 풀냄새 묻은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정성껏 붙였습니다. 그 냄새가 문득 어린 날의 오후를 불러오듯 흐릿하게 번져왔습니다.

저울 위에 놓인 것은 단지 종이와 잉크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마음, 늦었지만 건네는 미안함, 멀리 있어도 잊지 않았다는 다정함. 눈금이 조금 움직일 때마다 그 마음의 온기가 슬며시 드러났습니다. 만약 오늘 우리가 하루 동안 나눈 말들을 저울에 올려볼 수 있다면, 어느 말이 가장 무거웠을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짧은 안부 한마디가 의외로 묵직할 수도 있고, 길게 늘어놓은 설명은 의외로 가벼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조심스레 꺼낸 사과 한 줄이 우표 두 장보다 더 먼 곳까지, 더 오래 머무를 때가 있습니다.

우체국 창구의 유리창에는 작은 스크래치들이 많았습니다. 그 흔적들 사이로 서로 다른 하루들이 스쳐갔겠지요. 떠나보내는 일은 늘 조금의 떨림을 품습니다. 편지는 출발하는 순간 이미 기다림을 만들고, 그 기다림이 우리를 한 뼘 다르게 세웁니다. 기도도 이와 닮아 보였습니다. 정확한 도착 시간을 모른 채 보내지만, 출발이 분명할수록 마음은 한 곳으로 모입니다. 베드로전서의 한 구절이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 5:7). 맡긴다는 것은 사라지게 하는 일이 아니라, 분실되지 않을 주소를 적는 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창구에서 영수증을 건네받을 때, 종이 끝이 손끝에 차갑게 닿았습니다. 그 작은 감촉이 오늘의 마음을 정리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붙이지 못한 우표들이 제 안에도 있었습니다. 당연했던 사람에게 미뤄 둔 감사, 말끝에서 흐려진 사과, 아무 이유 없이 보내고 싶은 축복.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주소를 다시 적어 보고, 도착할 때의 표정을 상상해 봅니다. 떠나는 마음은 흔들려도, 주소가 분명하면 결국 닿는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문을 나서며 주머니 속 번호표가 사각거렸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짜가 찍힌 작은 종이 한 장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입술에 남은 풀냄새가 오래 맴돌았습니다. 그 향 속에서 제게도 늦지 않은 안부가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 줄, 괜찮다는 문장 하나. 저울은 조용하고,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이렇게 보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도착 소식을 준비하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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