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위 편지의 무게

📅 2026년 01월 06일 07시 01분 발행

오후의 우체국은 조용했습니다. 번호표가 천천히 줄어들고, 반사된 유리창 너머에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서 있었습니다. 작은 저울 위에는 봉투와 상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내려오고, 화면에는 그저 숫자 몇 개가 떠올랐다 사라졌습니다. 종이는 가볍고, 상자는 조금 더 무겁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앞에 서 계시던 노신사 한 분이 손바닥만 한 상자를 내미셨습니다. 테이프 모서리가 고르게 맞춰져 있었고, 손글씨로 적은 주소는 마치 오랜 시간 연습한 것처럼 단정했습니다. 직원이 상자를 저울에 올리자, 깜박이는 숫자가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순간 노신사는 아주 작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숨은 저울에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상자에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마음 한 토막이 함께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미처 건네지 못한 말, 멀리 있는 누구에게 보내는 안부, 서랍 속에 오래 머물던 물건에 붙어 있던 체온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체국의 저울은 정직합니다. 그러나 삶의 무게는 늘 수치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다림의 무게, 간신히 웃어 보이는 하루의 무게, 말끝을 삼키고 돌아선 저녁의 무게는 저울 대신 심장에 흔적을 남깁니다. 때로는 마음속에 내 작은 저울이 있어, 사람을 재고 상황을 달아 보고, 그 숫자에 맞춰 관계를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재어 본 결과는 유난히 차갑고 단단하게 굳곤 합니다. 숫자는 분명한 대신, 남은 여백이 너무 협소해집니다.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한 구절이 귓가를 스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마 11:28) 그 말은 체중계의 단위처럼 명확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어깨에 걸려 있던 시간을 조금 내려놓게 합니다. 초대라는 것은 그런 힘을 지니는가 봅니다. 무언가를 바꾸라고 다그치지 않으면서도, 마음의 저울추를 다른 쪽으로 살짝 옮겨 주는 힘입니다.

우편요금을 계산하던 직원이 봉투를 뒤집어 우표를 붙였습니다. 아주 작은 우표 하나가 종이의 한켠에 문득 빛났습니다. 그 작은 표식 하나로, 이 편지는 이 세상을 건너갈 자격을 얻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의 하루에도 그런 우표가 하나쯤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밥상에 앉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시간, 엷은 미안함을 망설이지 않고 건네는 눈빛, 오래 미뤄둔 안부를 한 줄 적는 손끝. 아주 작지만 분명한 표식 하나가 하루의 무게를 이동시킵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도 좋다는 신호처럼, 마음이 갈 길을 다시 찾게 합니다.

저울은 늘 침착합니다.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도 그렇게 놓일 때가 있습니다. 분주하게 더하거나 빼던 계산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올려 보는 것입니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 말고, 오늘 내가 들고 온 표정과 숨결까지도 함께. 그러면 대개는 예상보다 덜 무겁거나, 때로는 생각보다 더 견딜 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아직 쓰지 않은 다정함이 조용히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체국을 나와 보니 햇빛이 건물 벽에 사각형으로 눕고 있었습니다. 방금 보낸 편지처럼, 우리 안의 어떤 말들도 결국 자리를 찾아 가겠지요. 도착까지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다림의 길 위에서 조금 가벼워지는 법을 배우게 되니까요. 오늘 저녁, 각자의 서랍에 잠시 손을 넣어 보아도 좋겠습니다. 아직 붙이지 못한 우표가 하나쯤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을 조심스레 떼어내 손바닥에 올려 두면, 마음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균형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소리가 아주 작아도, 오늘이라는 하루를 끝까지 데려갈 만큼은 충분하겠습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