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28일 07시 01분 발행
사진관 뒤편, 문 하나를 지나면 붉은 등불이 낮게 숨 쉬는 작은 암실이 있습니다. 문틈이 닫히면 바깥의 밝음은 한 겹씩 접혀 들어가고, 트레이마다 얕은 물이 잔잔합니다. 집게로 건진 인화지에서 약품 냄새가 올라오고, 젖은 종이는 손끝에서 살짝 무게를 늘립니다. 처음 담근 종이는 아무 그림도 없습니다. 그냥 하얗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지켜보고 있으면, 회색의 먼지가 모이듯 얼룩이 생기고, 선이 이어지고, 누군가의 미소가 천천히 떠오릅니다. 너무 서두르면 상이 번져 망가지기 쉽고, 너무 오래 두면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킵니다. 적당한 흔들림과 기다림, 숨이 길어지는 그 시간에 사진은 자신을 찾아옵니다.
낮의 우리는 종종 반대로 움직입니다. 빨리 분별하고, 빨리 대답하고, 빨리 결론을 세웁니다. 마음속 암실에 들어갈 틈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대개 빨리 오지 않습니다. 용서의 얼굴, 고마움의 표정, 잊고 있던 기도의 냄새가 늦게 도착하는 편지처럼 찾아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강한 조명보다 최소한의 불빛입니다. 붉은 등불처럼 눈부시지 않지만 방해하지 않는 빛, 그 빛 아래서 마음은 비로소 자신을 읽습니다.
암실에는 마지막에 정착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과정이 지나야 사진이 빛 속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정착액이 필요해 보입니다. 여백에 적어 두는 한 줄의 감사, 식탁에 올려놓은 빈 의자처럼 떠난 이를 기억하는 마음, 잠들기 전 짧은 호흡 하나. 작지만 그런 습관이 오늘의 진실을 고정해 줍니다. 흔들리는 이야기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무늬가 있다는 것을, 빛이 돌아와도 쉽게 지워지지 않도록.
지난주에 서운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말투가 마음을 긁어 상처가 났고, 밤이 긴 줄도 모를 만큼 속이 뒤집혔습니다. 오늘, 혼자 있는 순간에 그 장면을 조용히 물에 담그니 다른 윤곽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지고 있던 피곤함, 내 말의 서툼, 서로의 두려움이 새어 나오는 듯합니다. 진실은 종종 맑은 소리로 오지 않고, 흐린 물결 속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급히 꺼내어 닦으면 찢어질 수 있는 종이처럼, 우리 마음도 조금 더 젖어 있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믿음도 그러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등불이 오래 버티는 힘을 냅니다. 들리지 않던 미세한 숨결과 눈짓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던 하루가, 안쪽에서는 조용히 현상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이 말은 거대한 정지 명령처럼 들리기보다, 암실 문 안에서 들리는 낮은 속삭임에 가깝습니다. 너무 밝지 않게, 너무 어둡지 않게, 내 안의 상을 찾도록 도와주는 음성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씻은 그릇을 건조대에 세워 두면 물방울이 서서히 내려앉습니다. 전자레인지의 낮은 윙윙거림, 옆집 현관이 닫히는 소리, 냉장고 불빛 정도면 충분한 밤입니다. 이런 밤은 작은 암실이 됩니다. 오늘의 말을 조용히 담그고, 누군가의 눈빛을 가만히 흔들어 보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선한 의도가 조금씩 떠오릅니다. 감사의 제목도 한두 개 더해집니다. 아직 완성된 사진은 아닙니다. 그래도 젖은 종이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들어 올릴 때의 마음은 분명합니다. 금방 마를 것 같지 않은 이 시간, 꾹 눌러 두었던 사랑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내일 아침, 빛이 다시 커질 때, 이 사진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온기가 있음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