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4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낮, 도서관 지하 복도 끝 제본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습니다. 얇은 빛이 바닥에 길게 흘렀고, 그 위로 종이 섬유가 먼지처럼 떠다녔습니다. 묵직한 프레스 기계가 숨을 고르는 소리를 내고, 따뜻해진 풀 냄새가 조용히 퍼졌습니다. 낡은 책들이 차례로 탁자 위에 누워 있었지요. 해진 등쪽이 드러나고, 자주 열리던 페이지의 모서리는 반짝이는 기름기와 닳은 흠집으로 자기의 역사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본사는 찢어진 가장자리를 가위로 고르게 다듬고, 얇은 붓으로 풀을 적셨습니다. 실과 바늘이 등쪽을 서성이듯 지나갈 때, 종이가 미세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 권씩 프레스 아래로 들어가 잠시 눌림을 받았습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표지가 다시 씌워지고, 새로운 제목 띠가 붙고, 마를 시간을 얻은 책들은 수레 위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듯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이와 닮아 있는 듯했습니다. 어떤 날은 문장과 문장 사이가 벌어지고, 호흡이 엉켜 순서가 뒤바뀐 것처럼 느껴집니다. 급히 붙여놓은 대답이 테이프처럼 비칠 때가 있고, 마음의 등쪽이 조금 더 얇아진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제본사의 손길을 떠올리게 됩니다. 버리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먼저 손끝으로 상태를 살피는 사람. 풀을 한 번에 많이 바르지 않고, 종이가 견딜 만큼의 습기를 기다리는 사람. 그 기다림이 바로 고침의 절반이라는 사실이 조용히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에서도 비슷한 시간이 있습니다. 큰 기적 대신 아주 작은 결합이 반복되는 나날,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속에서 천천히 붙어가는 계절입니다. 말씀 한 줄이 실처럼 등쪽을 관통해 페이지들을 엮어 줍니다. 처음에는 그 실이 조금 뻣뻣하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책이 다시 펼쳐질 때, 문장들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계신다는 고백이 오늘의 등쪽을 지탱해 주는 듯했습니다(시편 34:18).
마르는 시간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시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관계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서둘러 덮으면 풀은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다음 장을 넘길 때 다시 벌어지곤 합니다. 차마 말하지 못한 사과와, 끝내 묻지 못한 안부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저녁에도, 보이지 않는 접힘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느린 공정이 우리를 낡은 채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해가 손목에서 빠져나올 무렵, 새 표지를 입은 책들이 수레에 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익숙하지만 어딘가 새로워진 얼굴을 하고, 다시 서가의 자리를 찾아갈 준비를 마친 듯했습니다.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질 작은 탄력, 장을 넘길 때 사각거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오늘의 시간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우리의 저녁도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겠지요. 흩어진 문장들 사이로 실이 지나가고, 보이지 않는 손길이 등쪽을 어루만져 주었다는 느낌만 남긴 채로.
한 권의 책이 새로워졌다고 해서 옛날의 흔적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긁힌 자국은 여전히 빛을 받는 면이 되었고, 손때는 책을 더 단단히 품었습니다. 우리의 지난날도 그러할 것입니다.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그 표면에 남아 있는 따뜻한 눌림의 기억이 내일의 페이지를 조금 더 곧게 세워 줄 것입니다. 조용한 사각거림으로 이어질 다음 장이, 이미 가까이에 서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