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30일 07시 01분 발행
밤과 새벽이 맞닿은 시각, 지하철 종점역의 분실물 보관소에는 어제의 서두름이 조용히 풀려 눕습니다. 형광등이 무심하게 빛을 바르고, 투명한 상자 안에는 접힌 우산 몇 개, 모양이 다른 장갑 한 짝들, 학용품이 든 작은 파우치, 누군가의 어깨를 오래 지켜 주었을 법한 목도리가 차례를 기다립니다. 스피커에서는 다음 운행을 알리는 안내가 멀리서만 들리고, 전동차는 깊은 숨을 쉬듯 낮고 일정한 진동을 보탭니다. 하루 종일 달려온 시간의 열기가 식어가는 곳, 사람들의 손에서 잠시 떨어진 것들이 조용히 이름을 되찾을 순간을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한 직원이 새로 들어온 우산에 작은 태그를 달며, 특징을 적어둡니다. 검은색 손잡이, 끝부분의 은색 링, 물방울 무늬. 적어 놓지 않으면 금세 서로 비슷해 보이는 것들입니다. 사람도 때로는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마음 안에서 몇 가지가 놓쳐집니다. 말 끝에 남겨 두었던 다정함, 건네려다 삼킨 안부, 조금 더 듣고자 했던 인내, 나 자신에게 베풀지 못한 작은 배려. 그 모든 것이 종점의 상자 속 물건처럼 어딘가에 앉아, 누군가 찾아와 손에 쥐어 주기를 기다리는 듯합니다.
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망설임이 묻은 걸음으로 들어옵니다. 비 오는 저녁에 놓치고 내렸다는 낡은 우산을 찾는다고 하십니다. 직원이 상자를 뒤져 비슷한 우산을 몇 개 꺼내 놓습니다. 노인은 손잡이를 천천히 만져 봅니다. 나뭇결에 난 작은 흠집 하나를 찾는 표정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웃으며 말합니다. “이건 제 겁니다.” 그 한마디가 증명서가 되어 우산은 제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물건을 찾는 일은 때로,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알아보는 일과도 닮아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모르는 작은 흠집, 그 고유한 사연 하나가, ‘내 것’임을, ‘내 삶’임을 알려 줍니다.
성경에는 “주께서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셨나이다”(시 56:8)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서 흘러나간 것들, 말이 되지 못한 표정과 방치된 한숨까지 잊지 않고 세어 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종점역의 상자에 고요히 모이는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하루의 분실물을 어딘가 품고 계신다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깜빡 잊은 다정함,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미루어 둔 사과, 처음 마음의 맑은 의도. 사라진 것이 아니라, 회수를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점은 끝이면서, 동시에 방향이 바뀌는 자리입니다. 열차는 그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차장이 확인을 마치면 같은 선로를 거슬러 처음의 길처럼 다시 나아갑니다. 우리 마음에도 그런 종점이 필요해 보입니다. 더 가기 전에 멈춰 서서, 오늘의 잃어버림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는 시간. 무엇을 놓쳤는지 적어 보고, 그중 꼭 다시 받아야 할 하나를 조심스레 고르는 일. 서둘러 채워 넣지 않아도 괜찮아 보입니다. 이름을 불러 주는 순간, 그 하나가 먼저 다가올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첫차가 눈을 뜨면 플랫폼 바닥에 은빛이 번지고, 보관소의 상자 사이로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흘러갑니다. 어떤 물건은 주인을 만나 가볍게 사라지고, 어떤 물건은 조금 더 기다림을 배웁니다. 우리 마음의 남은 것들도 아마 그렇게 시간을 건너겠지요. 잊히지 않도록 기록해 두신 손, 그 손 위에 잠시 놓여 있으면 좋겠습니다. 종점의 침묵을 지나 다시 출발하는 열차처럼, 오늘의 걸음도 무게를 덜어 한 칸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준비된 듯 보이지 않더라도, 돌아가는 길 위에서 마음은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