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를 또박또박 적는 시간

📅 2025년 12월 03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우체국의 오후는 늘 비슷한 결을 지닙니다. 자동문이 조용히 열리고, 번호표가 얇게 뜯겨 나오는 소리, 바코드가 짧게 울리는 삑 소리, 고무도장이 잉크패드에 닿았다가 봉투에 새겨지는 탁 소리. 벽 쪽 나무의자에 앉으면, 누군가는 작은 상자를 무릎에 올려 마지막으로 테이프를 한 바퀴 더 감고, 누군가는 흰 봉투 위에 주소를 또박또박 적습니다. 글자들이 줄을 맞추는 모습은 마음이 길을 찾는 모습과 닮아 보입니다. 한 획, 한 획, 지워지지 않을 만큼 분명하게,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 속도로.

제 차례가 되어 상자를 저울 위에 올리면 숫자가 몇 번 깜빡이며 자리 잡습니다. 그 잠깐의 흔들림이 무색해질 만큼, 결국 하나의 무게로 멈춥니다. 누구에게나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의 숫자가 깜빡이며 흔들립니다. 오늘이 과연 이런 무게였나, 조금 가벼웠으면 좋겠고, 때로는 이 정도면 감당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직원이 뽁뽁이 완충재를 정성스레 감싸며 “파손주의” 스티커를 붙이는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말들도 이런 배려를 입고 떠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급한 말에는 모서리가 많아 상대의 손을 베기 쉽고, 지나치게 묵직한 말은 받는 이를 지치게 할 때가 있으니, 완충재 같은 침묵이 사이사이에 들어가면 얼마나 다정할까 싶습니다.

우체국은 보내는 집과 받는 집 사이의 중간 지점입니다. 문 안에 있지만 이미 떠남의 기운이 있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오는 것을 위한 준비가 끝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삶도 어쩌면 늘 이 중간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합니다. 손에 쥔 상자 안엔 작고 사소한 것이 들어 있어도, 마음은 종종 큰일을 떠나보내듯 조심해집니다. 보내고 나면 책상 한쪽이 비어 보이듯, 마음에도 빈자리 하나가 생기지요. 그 빈자리에는 때로 감사가, 때로 그리움이,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들어옵니다. 떠나보내는 법을 익힐수록, 우리는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반송되는 소포들도 있습니다. 주소 불명, 수취인 불명, 보관 기간 경과. 사람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너무 늦은 사과, 잘못 적은 이해, 끝내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사연에는 반송 도장이 없다는 확신이 가끔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우편번호를 모르는 기도라도, 문 앞에서 망설이다 접어 넣은 서툰 고백이라도, 거기에는 ‘수취인 부재’라는 표식이 붙지 않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주소를 몰라 발길을 돌리던 날에도, 그분께 가는 길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처리를 마치고 접수대의 유리 너머로 직원과 짧은 눈인사를 나누면, 상자가 컨베이어 위로 미끄러져 사라집니다. 그 순간이 늘 이상합니다. 방금 전까지 내 손에 있던 것이 내 삶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느낌. 하지만 동시에, 이제야 제 자리를 찾아 떠나는구나 싶은 안도도 따라옵니다. 문을 나서며 손끝에 남은 잉크 냄새와, 주머니에 쑥 넣은 번호표의 얇은 감촉이 함께 걸음을 동무합니다. 아직 적지 못한 몇 개의 이름이 마음 안쪽에서 조용히 빛을 내고, 오늘 어딘가로 보내질 한 문장과, 내일쯤 도착할 작고 선한 소식이, 언뜻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우체국의 오후는 그 잔잔한 흔들림 속에서, 우리 각자의 마음이 향하는 주소를 천천히 밝혀 보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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