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2월 10일 07시 01분 발행
도서관 지하, 조용한 수선실에 오후 빛이 벽을 타고 흘렀습니다. 좁은 창턱으로 들어온 먼지가 천천히 떠다니고, 풀 냄새가 언 손끝을 감싸 주었습니다. 낡은 책 한 권이 흰 천 위에 눕혀져 있었고, 사서의 장갑 낀 손이 얇은 붓을 들어 책등의 올풀린 부분을 따라 풀을 입혔습니다. 실은 면처럼 부드러웠지만 작은 힘에도 곧게 당겨져, 흐트러진 장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묶어 주었습니다. 살짝 눌러 놓는 나무판과 덧댄 종이가 어제와 오늘의 시간을 고르게 나누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옆에, 금빛이 다 벗겨진 서명과 커피 얼룩이 남아 있었습니다. 얼룩은 지우지 않았습니다. 사서의 손길은 얼룩을 지나치고, 단지 장과 장 사이의 틈을 메우는 데 머물렀습니다. 책이 지나온 길을 지워 이겨 내게 하려는 대신, 그 길을 품은 채 다시 서도록 돕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말씀 한 줄이 조용히 생각났습니다. 누군가의 일상에도 이런 손길이 닿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얼룩을 부끄러움으로만 보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풀은 빨리 마르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이 수선의 절반이었습니다. 사서는 의자를 조금 뒤로 밀고, 눌러 둔 책이 숨 고르듯 자리 잡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습니다. 딱 하고 아주 작은 마찰음이 날 때마다, 종이와 종이 사이에 새로운 평온이 깃드는 듯했습니다. 급히 드라이어를 가져와 바람을 쐬면 더 빨라질 수 있겠지만, 이 방은 열 대신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천천히 마른 풀은 더 단단하게 붙는다는 사실을 이곳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종종 책처럼 가장자리부터 해어지는 것 같습니다. 메모는 서둘러 적혀 삐뚤고, 모서리는 접혀 너덜해지고, 약속의 잉크는 습기에 번지는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통째로 새 책을 꺼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조용히 현재의 페이지를 지켜 주길 바라게 됩니다. 지나간 문장을 지우지 않고, 대신 다시 이어 읽을 수 있도록 책등을 가다듬어 주는 손. 그 손길이 우리 곁에도 늘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은 유난히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위층에서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소리가 멀리 물결쳤습니다. 누군가는 대출 스탬프를 찍고, 또 다른 누군가는 책을 되돌려 놓았습니다. 바쁜 왕복 속에서도 지하의 한 자리는, 한 권이 쓰러지지 않도록 세워 주는 일에 마음을 떼지 않았습니다. 우리 곁에도 이런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보다 먼저 다가와 어깨 높이를 맞추고, 흩어진 마음을 낱낱이 주워 담는 자리. 거기에 기대면, 아직 덜 마른 풀의 촉감처럼 미지근한 위로가 전해집니다.
오늘 하루의 문장을 덮어 두면, 책등 어딘가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급히 넘기던 장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며 내는, 알아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신호. 새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다시 서는 느낌. 언젠가 누군가가 이 책을 펼쳐도 장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으리라는 확신. 마음도 그렇게 고쳐지는 밤이 있습니다. 얼룩은 남아도 좋고, 흰 장은 남겨 두어도 좋습니다. 다만 이 조용한 기다림 속에서, 우리도 다시 세워질 수 있다는 예감이 아주 가볍게, 그러나 분명하게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