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 사이에 머문 숨

📅 2025년 11월 23일 07시 01분 발행

오후 약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래된 시계방을 지나쳤습니다. 유리 진열장 너머로 겹치는 ‘짹짹’ 소리가 낮게 흐르고, 회색 앞치마를 두른 주인 어르신이 작은 루페를 한쪽 눈에 끼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바늘처럼 가는 집게가 스프링을 살짝 들어 올리고, 한 방울의 밝은 기름이 축축 떨어져 축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얇은 빛의 방울 하나가 금속과 금속 사이에서 마찰을 달래고, 멈칫하던 시간이 다시 걸음을 찾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틀렸다고 느낄 때, 시계를 들고 그 가게로 들어오겠지요. 그러나 어르신은 시간을 고치지 않으십니다. 그는 다만 시간을 헤아리는 작은 기계를 돌보고, 오래된 윤활유를 닦아내고, 굳은 먼지를 털고, 맞물린 톱니의 이빨을 조용히 살핍니다. 그러면서 시계의 고유한 박동을 되찾게 하십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제 마음속에서도 작고 깊은 소리가 났습니다. 서둘러야 한다는 마음, 남들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마음, 멈추면 안 된다는 마음들이 서로 밀치며 흔들리던 자리에서, 누군가 한 방울의 기름처럼 자비를 떨어뜨려 주는 듯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만사에 때가 있다는 말을 오래전에 들었습니다. 그 문장은 언제 부름을 받듯 제 앞에 나타나 제 속도를 낮춥니다. 어르신의 손놀림은 빠르지 않았습니다. 몇 번 돌리다 말고 멈추어 귀를 가까이 대고, 다시 한 번 조여 보고, 또 잠깐 숨을 고르며 ‘이제 괜찮겠지’ 하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고치는 일의 반은 기다림이라는 듯했습니다. 듣고, 멈추고, 다시 손대고, 아주 작은 차이를 구분하는 그 귀 기울임이, 오래 기도하는 마음과 닮아 보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시간을 흘러가는 적으로 느낍니다. 그러나 오늘 그 시계방에서, 시간은 적도 친구도 아닌, 함께 걷는 동무처럼 여겨졌습니다. 빨리 가자고 등을 떠미는 존재가 아니라, 제 걸음으로 걷게 하는 리듬의 이름 같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어디서 박동을 잃었는가’ 하는 물음일지 모릅니다. 어떤 날은 큰 부품이 부러져 멈추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루 한 톨이 끼어 흐름을 잡아끄는 것처럼 마음도 조용히 버벅거립니다. 미처 건네지 못한 한마디, 곧게 보지 못한 눈길 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라 여긴 무심함 같은 것들이 제 속에서 마찰이 되어, 보폭을 자꾸 어긋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르신이 고쳐낸 시계를 주인에게 건네셨습니다. 손목에 채우자마자 작은 진동이 피부를 두드렸고, 그 사람은 웃음을 흘렸습니다. 더 빨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대로 ‘자기 박자’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제 손목에서도 흐르는 맥이 느껴졌습니다. ‘그래, 이리 뛰다가도 결국은 이 박자 안에서 사는 거지.’ 그런 문장이 속으로 지나갔습니다.

오늘 밤 불을 끄기 전, 서랍에 넣어 둔 시계를 한 번 꺼내어 귀에 가져다 대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소리를 듣다 보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한때 가까웠으나 소식이 멀어진 이름, 매일 마주하지만 마음을 덜어 건넨 적 없던 이름, 그리고 자신의 이름. 그 이름들 사이를 건너가며 ‘늦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살며시 올라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시계방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바깥 세상은 여전히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제 걸음은 조금 다르게 바닥을 디뎠습니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 들숨과 날숨이 맞물리는 속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루에도 그런 보이지 않는 한 방울을 떨어뜨려 주시고, 마찰이 덜한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제 박자를 찾도록 돌보아 주신다는 생각이 마음을 오래 밝혔습니다. 오늘의 남은 시간도 그 박동에 귀를 대고 천천히 걸어가면, 어쩌면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되찾은 마음을 만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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