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으로 스며드는 은혜

📅 2025년 08월 12일 11시 30분 발행

가끔은 하루가 잘 포개지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어제의 마음이 오늘의 어깨 위로 남아, 단정히 접히지 못한 채 걸려 있는 날들이지요.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말할 수 없어서 조용히 삼킨 마음이 한 자리에 엉켜 있을 때,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누군가 묻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그저 조용히 앉아 있게 되는 밤이 있습니다.

깨지지 않았으나 금이 간 잔을 떠올립니다. 그 잔이 여전히 따뜻한 차를 담아내듯, 우리 안의 금도 삶을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 가느다란 틈이 빛을 불러들이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완전해야만 사랑받는 존재는 아니지요. 성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고 말합니다(이사야 42:3). 상한 채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꺼져갈 뿐, 아직 남아 있는 불씨의 온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미약함을 어둠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머무는 자리를 만들어 주십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를 지탱해 준 것은 큰 대답보다 작은 충실이었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는 순간의 공기, 출근길 첫 계단을 밟으며 스스로에게 건네는 짧은 고개 끄덕임, 버스 창에 이마를 대었을 때 전해지는 차가운 유리의 온도, 설거지 바구니에 남은 물방울 하나. 거창하지 않은 장면들이 마음의 살림을 꾸려 왔습니다. ‘나는 여기에 있다’는 감각은 어두운 곳에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 감각 하나로 하루를 통과하곤 했습니다.

가슴 안에 오래 묻힌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과가 오지 않아 미완으로 남은 관계도 있으시겠지요. 그럼에도 이상하게, 어느 날 문득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준 저녁이 떠오릅니다. 그 한 번의 부름이 그늘을 옅게 만들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듯 마음도 조금씩 자리를 옮겼고, 우리는 그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 채 고마움을 알아차렸습니다. 신비는 멀리 있지 않고, 설명되지 않아도 진실할 수 있다는 사실만 남습니다.

저는 가끔 어둠 속에서 오래된 스탠드 불빛을 봅니다. 더 밝아지려 애쓰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 견고히 서 있는 작은 등불입니다. 그 빛은 방 안의 모서리를 모두 밝히지는 못하지만, 앞의 책 한 장을 읽기엔 충분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루를 건넜습니다.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오늘의 한 장을 읽었습니다. 그 한 장이 다음 장을 여는 문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빠르게 구원되는 장면보다, 느리게 회복되는 순간들로 가득합니다. 누군가는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했다고 마음을 낮추지만, 사실은 쓰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마음의 장부에 적히는 것은 성취의 숫자만이 아니라, 다시 일어난 횟수, 눈을 감고 숨을 고른 시간, 말 대신 침묵으로 자리를 지킨 밤입니다. 하늘은 그 숫자를 셉니다.

혹시 오늘, 당신의 걸음이 평소보다 짧았더라도 괜찮습니다. 충분하다는 말은 누군가의 허락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조용히 수긍되는 깨달음이니까요.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은 한낮의 창보다 약하지만,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금이 간 자리를 따라 은혜가 길을 찾고, 조심스럽게 당신을 통과합니다. 남겨진 상처로도 사랑이 흐를 수 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 밤의 안부가 되어 드리면 좋겠습니다.

오늘 당신 안의 등불이 밝지 않아도,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실이 희망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내일의 해답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도, 기다림이 꼭 빈손은 아닙니다.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단단해지고, 손이 더 깊어집니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커다란 확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품을 수 있는 작은 그릇 하나일지 모릅니다. 금이 갔다면, 그 틈으로 들어올 빛도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여기 계십니다. 그 자체로 귀합니다. 오늘의 숨이 내일의 숨을 부르고, 틈 사이로 스며든 은혜가 길을 이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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