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5월 11일 07시 00분 발행
골목 끝 제과점 불이 하나둘 꺼지고, 쇼케이스 유리가 빈 자리의 차가움을 비출 때, 안쪽 작업대만 아직 미지근했습니다. 스테인리스 볼마다 천이 살짝 덮여 있고, 천 아래에서 반죽이 아주 느린 호흡을 이어갔습니다. 온도계의 붉은 눈금이 얌전히 머물고, 타이머가 간헐적으로 짧은 알림을 내더니 다시 정적이 자리를 찾았습니다. 손등에 밀가루 가루가 하얗게 앉아 있었고, 코끝에는 발효의 은근한 향이 조용히 번졌습니다.
반죽은 말이 없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전했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눌렀을 때 천천히 돌아오는 자국, 표면 아래에서 오르는 고운 기포, 그 미세한 움직임이 시간을 가늠하게 했습니다. 조급할수록 결이 찢어지고, 서두르면 겉만 부풀어 속이 덜 익는다는 것을, 그 고요한 덩어리가 알려주었습니다. 눌렀다 놓으면 되돌아올 틈을 주는 일, 그 사이에 온기가 식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 누군가의 호흡을 기다리듯 반죽의 호흡을 지켜보는 일. 오늘 밤은 그 일만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면 마음도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말이 빨랐던 순간에는 마음이 따라오지 못했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려 했던 일들에는 금세 실금이 갔습니다. 관계도 그렇고, 몸의 회복도 그렇고, 기도의 자리도 그러했습니다. 뜨거움만으로는 안쪽까지 닿지 못한다는 것을, 이 미지근한 온도와 기다림이 알려주었습니다. 온기가 꾸준히 이어질 때, 말랑한 것이 제 모양을 찾아갑니다. 소금 한 꼬집의 절제가 결을 단단하게 하고, 약간의 단맛이 발효의 쓴내를 부드럽게 덮어 줍니다. 겉을 번쩍이게 하는 기술보다, 식지 않는 시간과 눈치 보지 않는 기다림이 더 깊은 맛을 키우는 듯했습니다.
주님께서 누룩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작은 것이 반죽 전체를 적시듯, 보이지 않는 변화가 삶을 바꾼다는 말씀이었습니다(마태복음 13:33). 오늘 밤 이 작은 작업대 위에도 그 말씀이 조용히 스며 있었습니다. 손길의 세기를 줄이고, 타이머의 울림 사이사이에 침묵을 남겨 둘 때,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이 겉으로 올라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모여 향이 되었고, 향은 누구의 설명보다 먼저 마음에 닿았습니다.
기도도 닮아 있었습니다. 소리 큰 간청이 전하지 못한 것을, 규칙적인 호흡과 미지근한 기다림이 데워 갈 때가 있었습니다. 말로 다 꺼내지 못한 걱정이 천 안쪽에서 조금씩 올라오고, 감사가 설탕알처럼 녹아들어 날카로움을 둥글게 만들었습니다. 억지로 늘리고 싶을 때마다 멈춤이 찾아와 결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 멈춤이 어두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등에 이마를 비비듯, 쉬어 갈 곳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날이 밝으면 이 반죽은 예열된 오븐으로 들어가 껍질에 금빛을 입겠지요. 꺼내는 순간 들리는 조용한 금 가르는 소리, 빵결을 가르는 칼 아래로 퍼지는 증기, 마주 앉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는 고소한 향.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풀리는 장면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밤을 부풀린 것은 이스트였고, 그 이스트가 일하도록 자리를 비켜 준 것은 시간과 온기였습니다. 오늘 마음 어딘가에서도, 말로 설명되지 않는 작고 은근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모양이 뚜렷하지 않아도, 미지근한 숨이 계속된다면 그 또한 충분하다는 믿음 하나, 그 믿음이 오늘을 지탱하는 온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작업대를 정리하며 천을 한 번 더 고르게 펼쳐 주었습니다. 천 아래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들리지 않는 것을 듣듯 기다린 시간이, 내일의 향으로 건너갈 때의 기쁨이 떠올랐습니다. 허리춤에 묻은 가루를 털어 내고 문을 닫으며, 마음 안쪽에도 아직 식지 않은 미열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미열이 어디까지 번져갈지, 조용히 지켜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