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에서 시작되는 평안

📅 2026년 03월 03일 07시 00분 발행

오늘 본당에 조용한 손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오래된 가죽 가방 하나를 들고 오신 피아노 조율사님이었습니다. 뚜껑을 열자 내부의 felt와 나무에서 은은한 냄새가 올라왔고, 작은 망치와 고무 쐐기, 은빛 튜닝 포크가 차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율사님은 말수가 적었습니다. 건반을 세차게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낮게 울리는 한 음에 귀를 기울여, 미세한 떨림을 가늠하듯 손목을 아주 조금만 움직이셨습니다. 당기고, 멈추고, 듣고, 다시 아주 조금. 그 반복 속에 시간이 천천히 흘렀습니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라 고요해졌습니다. 조율은 고치는 일이면서도, 부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어긋난 현을 잡아당기되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고, 음이 스스로 자리를 찾을 만큼만 여지를 남깁니다. 조율사님은 숫자보다 귀를, 조급함보다 숨을 믿는 사람 같았습니다. 기준음 하나를 정확히 세우면 다른 음들이 거기에 기대어 조금씩 돌아옵니다. 큰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주 작고 섬세한 주의의 모음이었습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음이 빗나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말의 각도가 조금 예리해진 때, 서둘러 판단했던 장면, 가슴께에 남은 무게 같은 생각 하나. 실수는 소리지르는 법으로는 돌아오지 않더군요. 마음의 덮개를 번쩍 열어놓는 대신, 살짝 들어 숨이 오갈 틈을 주면 무엇이 어긋났는지가 더 또렷해집니다. 오늘의 기준음을 어디에 둘지 천천히 찾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 기준음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숨 사이로 드나드는 짧은 감사, 이름을 부드럽게 떠올리는 기도, 눈을 마주치며 건네는 한마디의 온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 3:15). 이 말씀을 생각하면, 마음 한가운데 놓을 기준음이 떠오릅니다. 내 마음의 속도를 다그치지 않고, 평강이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도록 내어드리는 일. 그러면 맞추지 못하던 관계의 음정도, 미뤄 두었던 사과의 타이밍도, 아주 조금씩 제 자리로 돌아오는 기미를 보입니다. 조율사님이 현을 세게 당기지 않듯, 우리도 자신에게 너무 급하게 들이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시간은 때로 치료가 아니라, 귀 기울임의 공간이더군요.

조율이 끝날 즈음, 본당에 익숙한 찬송이 흘렀습니다. 달라진 건 음의 높낮이보다 공기의 결이었습니다. 소리가 부딪히지 않고 서로에게 자리 양보를 하는 듯했습니다. 마음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한 음이 제자리를 찾으면, 나머지 음들이 굳이 다툴 필요를 잃습니다. 오늘 각자의 저녁에, 자신 안의 작은 소리 하나에 잠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떠오릅니다. 어긋난 데를 탓하기보다, 맞아 들어가는 찰나를 알아보는 눈이 깨어날 때, 조용한 기쁨이 문턱을 넘어옵니다. 그 기쁨이 내일의 첫 음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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