헹굼 사이의 고요

📅 2025년 11월 21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끝 모퉁이에 작은 세탁소가 있습니다. 회전 드럼이 천천히 돌 때 나오는 낮은 물소리와 규칙적인 진동이, 마치 누군가의 심박처럼 공간을 가만히 채웁니다. 의자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오늘 묻은 말과 표정, 허둥대던 발걸음이 함께 돌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드럼 안에서는 셔츠와 수건, 누군가의 잠옷이 겹치고 풀리며 서로를 스치는데, 그 움직임이 폭력적이지 않아 묘하게 안심이 됩니다. 부딪힘이 있되 다치지 않는 거리,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간격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세탁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미지근한 물이 스며드는 예비세탁, 거품이 올라오는 본세탁, 거품이 사라지는 헹굼, 그리고 빠르게 도는 탈수. 마음도 종종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하루의 이야기를 허락할 만큼만 물에 적시는 시간, 고집과 오해를 거품처럼 일으켜 겉으로 드러내 보는 시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조용히 흘려보내는 시간, 마지막으로 중심을 잃지 않도록 힘을 모으는 시간. 어느 하나를 건너뛰면, 옷감에 남은 세제가 피부를 거슬리듯 마음도 조금씩 거칠어지는 법이지요.

세제 냄새 사이로 따뜻한 스팀이 얇게 퍼집니다. 집게로 영수증을 꼽아두는 주인의 손놀림이 단정합니다. 벽에 걸린 달력의 그림자는 조금씩 기울어, 기다림의 길이를 알려줍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안의 소음이 가라앉는 시간이란 사실을 이곳에서 자주 배웁니다. 떠밀려온 생각들이 바닥을 한 번 스치고 나면, 물처럼 맑아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무엇을 놓아야 하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천천히 윤곽이 잡힙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요한일서의 저 구절이 문득 떠오릅니다(요일 1:9). 이곳의 헹굼처럼, 설명보다 신뢰가 먼저인 일들이 있습니다. 말로 다 꺼내지 못한 마음의 얼룩도, 닦아내려 애쓸수록 번지던 기억도, 누구의 숨소리 하나로 잔잔해지곤 합니다. 사과가 늦어 벼려진 주름처럼 마음에 자국이 남을 때가 있지만, 제때 꺼내 펼친 옷이 부드럽게 식는 것처럼, 때로는 시기도 은혜가 됩니다.

세탁이 끝나가면 드럼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고,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하던 힘이 저절로 가라앉습니다. 그 순간에 묘한 평화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끝까지 붙들던 손에서 힘이 빠질 때 찾아오는 평온, 어쩌면 기도의 결도 그와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참을 말하던 입술이 조용해지고, 어지럽던 생각이 장단을 맞출 때, 마음의 물길이 하나로 모입니다.

뚜껑이 열리고 따뜻한 수건을 꺼낼 때, 살결로 닿는 온기가 오래 전 안부처럼 다정합니다. 삶도 이렇게 한 번씩 헹굼 사이의 고요를 지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높은 온도는 색을 빼고, 너무 낮은 온도는 때를 붙잡아 두듯, 우리에게 알맞은 온도와 속도가 있습니다. 누구는 울 누빔처럼 견고하고, 누구는 가벼운 린넨처럼 바람을 잘 통하게 만들어졌겠지요. 각자 다른 표식이 달린 옷처럼, 우리도 서로 다른 주의보를 품고 살아갑니다.

문득 물소리가 잦아드는 오후입니다. 오늘의 마음이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 가늠해 보게 됩니다. 아직 거품이 필요한지, 아니면 말없이 흘려보낼 차례인지. 누군가가 다정히 접어 내미는 수건 한 장처럼, 우리 안의 어떤 온기가 곁으로 건네질지. 답은 서둘러 오지 않아도 괜찮아 보입니다. 회전이 멈출 때를 아는 기계처럼, 마음도 어느 순간 스스로 조용해지곤 하니까요. 그 고요 속에서, 남아 있는 향기가 누구에게 닿게 될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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