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12일 11시 27분 발행
창밖 유리 위로 가느다란 빗줄기가 미끄러집니다.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고, 하루의 계획들은 흰 종이 위 연필 자국처럼 쉽게 지워질 것만 같습니다. 마음도 종종 이 날씨를 닮지요. 해야 하는 일들은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부르고, 기운은 조금 늦게 따라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빛을 생각합니다. 번쩍이는 조명 말고, 문틈 아래로 새어 들어오는 여린 빛, 냄비 뚜껑 위에 맺힌 물방울에 잠깐 걸리는 햇살 같은 빛 말입니다.
사람마다 하루 속에 그런 빛 하나쯤은 있으시지요. 컵의 손잡이를 감싸는 손끝의 온기,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잠깐 마주친 자신의 눈빛, 누군가 건넨 짧은 안부 메시지의 말끝.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남는 것들입니다. 흐린 날에는 이런 것들이 더 잘 보입니다. 밝음이 그늘과 다투지 않아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살다 보면 답이 늦게 오는 때가 많습니다. 질문은 분명한데, 회신은 침묵으로만 채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 사이를 견디는 마음은 종종 초조함과 오해를 불러오지요. 그런데 늦음에도 역할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웁니다. 익을 시간을 얻지 못한 열매는 단단하지만 달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답을 기다리는 동안, 질문 자체의 모양을 가다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다듬어진 질문은 삶과 더 잘 맞닿아, 마침내 도착하는 답을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입니다.
기대는 늘 손에 쥔 끈처럼 우리를 당깁니다. 너무 세게 움켜쥐면 손바닥이 아프고, 너무 느슨하면 잃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어느 저녁, 그 끈을 아주 조금만 풀어 보았더니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해졌습니다. 포기가 아니라 숨이 드나들 틈을 내어준 것뿐인데, 그 틈으로 오래된 기도가 들어오고, 못다 한 말들이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기대는 줄이고 희망은 지키는 일, 그 미세한 차이를 배워 가는 중입니다.
문득, “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애가 3:23)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새로움이 아침마다 온다는 이 말은, 새벽마다 큰 사건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탁에 놓인 그릇 위로 얹히는 빛의 각도, 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에 도착하는 공기의 온도, 물 끓는 소리에 마음이 일어나 앉는 작은 순간들. 거기에도 새로움은 어김없이 내려앉습니다.
우리는 자주 자신에게 엄격합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단단했어야 했는데, 같은 문장을 마음속에서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성적표로 오지 않지요. 사랑은 그저 곁에 오래 서 있는 일로 자신을 증명합니다. 실패 뒤에 찾아와 등을 쓸어주는 손길, 실수가 되어버린 말 앞에서 눈을 맞추는 용기,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곁을 떠나지 않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오늘의 우리를 지탱합니다.
비가 그친 오후, 물웅덩이에 비친 구름이 천천히 흘러갑니다. 바람이 지나가면 웅덩이는 잠깐 잔물결을 일으키지만 금세 다시 고요를 회복합니다. 마음도 그럴 수 있지요. 흔들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살아 있다는 표지가 되어줍니다. 우리는 흔들리면서 방향을 기억합니다.
오늘도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살아가실 겁니다. 누군가는 아직 어둠을 지나고, 누군가는 이미 밝은 길을 걷고 계시겠지요. 어떤 자리에서든, 문틈 아래로 스며드는 빛이 있다는 것을 마음 한쪽에 두고 싶습니다. 그 빛은 고집스럽지 않고, 조용히 당신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아직 말이 되지 않는 당신의 마음을 말이 되기 전 그대로 품어 줍니다.
저는 이 밤, 당신의 걸음이 조금 덜 무겁기를 기도합니다. 돌아보면 별것 아닌 장면이 오늘을 지켜냈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기를, 그 장면이 내일의 당신에게 작은 용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흐린 날은 빛을 가리기보다, 빛의 방향을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그러니 내일 창문을 열 때, 하늘이 맑든 흐리든, 당신의 안쪽에서 먼저 켜지는 은은한 불빛이 함께하시기를 조용히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