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머그컵과 아침의 빛

📅 2025년 08월 13일 13시 00분 발행

부엌 선반에 오래된 하얀 머그컵이 하나 있습니다. 손잡이와 몸통 사이, 살짝 보일 듯 말 듯한 미세한 금이 자리합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는 잠깐 망설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더 자주 손이 갔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을 때 금 가까이 손끝을 가져가면 아주 미세한 온기가 스며 나오는 것 같아, 마치 컵이 제 체온을 확인해 주는 듯했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 머그컵을 닮을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 한쪽에 오래 묻어둔 실금이 조용히 있습니다. 이름 붙이기 애매한 서운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걱정,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어르는 슬픔 같은 것들입니다. 대개는 잘 견디지만, 어느 날은 햇살이 유난히 밝아서, 또 어느 날은 바람이 사소하게 차가워서 금이 눈에 들어옵니다.

금이 있다고 해서 컵이 제 자리를 잃지 않듯, 실금이 있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이 사랑을 그만두지는 않나 봅니다. 오히려 그 가느다란 선을 따라 기억이 흐르고, 기억을 따라 조심스러움이 생깁니다. 말의 끝을 조금 낮추고, 발걸음을 한 박자 늦추는 그 조심스러움 덕에 누군가의 표정을 더 깊이 읽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아침에 창을 열면 먼지 같은 빛이 방 안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 빛이 머그컵의 금 위로 살짝 눌러앉을 때, 문득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아침마다 새로우니”(예레미야애가 3:23). 새로움이란 모든 흠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흠을 가진 채로도 온기가 다시 시작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금이 있어 빛이 그 길로 들어오듯, 우리 마음의 틈도 누군가의 따뜻함이 지나갈 통로가 되어 줍니다.

정류장에서 마스크를 고쳐 쓰는 이의 손, 우편함을 여는 이웃의 굽은 등, 빵집 앞에서 고소한 냄새를 잠시 들이마시는 사람의 어깨. 오늘도 여러 삶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고 지나온 질문의 모양도 다를 텐데, 신기하게도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작은 인사가 생깁니다. 그 인사 안에 말 못한 사연들이 포개지고, 포개진 마음이 잠깐씩 서로의 짐을 가볍게 합니다.

어떤 날은 기도가 문장으로 잘 모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머그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으면, 말이 아닌 온기가 먼저 도착합니다. 따뜻함은 천천히 살에 스며들고, 스며든 온기는 마음 깊숙한 곳의 얼음장을 조용히 녹입니다. 꼭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 그저 숨결이 고르게 놓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때가 있습니다.

집 앞 나무에는 새 잎이 아직은 작은 손바닥처럼 떨립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잎맥마다 푸른 물이 돌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금이 간 머그컵처럼, 연약한 잎맥처럼, 우리도 쉽게 상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강해지려 애쓰던 어제의 마음이 오늘은 조금 맑아져서, 상함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하루가 흐릅니다. 설거지대에 머그컵을 올려두니, 금이 은빛 실선처럼 고요히 빛납니다. 누구도 그 선을 없애지 못하겠지만, 그 선 덕분에 확인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따뜻함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조심히 다루어질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아주 작은 틈에도 빛은 길을 찾아 들어온다는 것. 오늘의 마음이 그 사실을 잠깐 기억해 둔다면, 밤이 올 때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 부드럽게 이어질 듯합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