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15일 07시 01분 발행
초여름 비가 은빛시장 골목을 가만히 적십니다. 생선 가게의 얼음물은 바닥을 타고 흘러내리고, 콩국을 끓이는 수증기가 낮게 피어오릅니다. 그 사이에 분홍 우체통 하나가 젖은 빛을 머금고 서 있습니다. 손때 묻은 우산 손잡이를 쥐고 잠깐 멈춰 서니, 진한 소나무 송진 냄새가 목재상 앞에서 은근히 풍깁니다. 비 오는 오전의 공기는 말수가 적고, 골목의 숨결도 천천히 이어집니다.
우체통을 바라보고 있으면, 보낸 적 없는 편지들이 떠오릅니다. 한동안 마음 위를 맴돌기만 하다가 종이가 되지 못한 말들, 적어도 좋을 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심경, 보내는 용기 대신 잠시 더 품어 둔 사연들 말입니다. 봉투 하나의 무게는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기는 기다림은 대개 무게를 갖습니다. 주소와 우표, 받는 이의 이름을 적는 동안, 마음은 자기 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기도도 이와 많이 닮아 보입니다. 말이 앞서는 날도 있지만, 대개는 말보다 숨이 먼저 나옵니다. ‘받는 이’란 칸을 또렷이 쓰는 일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혹시 오늘 제 마음의 받는 이는 누구였는지, 이 골목에서 문득 떠오릅니다. 바쁜 걸음으로 지나치면서도, 가만히 마음의 수신인을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먼 길이 아닙니다.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예레미야 29:12). 우체통의 작은 입처럼, 들을 귀는 이미 열려 있다는 약속이지요. 우리가 넣는 것은 종이이지만, 하늘이 받는 것은 숨결과 방향일지 모릅니다.
분홍색이 비에 젖어 조금 더 차분해진 모습이 반갑습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비에 스며 은근해진 색채가 오래된 마음 같아서 그렇습니다. 목재상 앞에 세워 둔 원목들에서는 송진이 빗물에 희미하게 번지고, 그 향 안에 묵은 기억 하나가 따라옵니다. 오래전에 쓰다 만 편지, 혹은 말끝을 맺지 못한 대화. 어쩌면 그때의 미완이 오늘의 기도로 천천히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를 넣는 일은 늘 약간의 ‘나중’을 품습니다. 넣었다고 해서 즉시 도착하지 않고, 그 사이를 시간을 통해 건너갑니다. 기다림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되어, 우리를 조급함에서 조금씩 꺼내 줍니다. 하나님도 기다림을 낯설어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서툴러도, 우표가 삐뚤게 붙어 있어도, 주소가 서툰 필체로 흔들려 있어도, 읽히는 자리는 분명하다는 확신 말입니다.
비가 더 촘촘해지자 우산살에 작은 점들이 박히고, 우체통의 금속 입구에서 빗방울이 가늘게 떨립니다. 한 장의 봉투를 밀어 넣으면, 안에서 매끄럽게 미끄러지며 ‘툭’ 하고 아주 작게 울립니다. 그 소리는 밖에서 금세 사라지지만, 마음 안에서 한동안 잔향처럼 남습니다. 마치 내 안의 덜 정리된 것들도 그 소리와 함께 어딘가로 전달되는 듯합니다.
시장 안쪽에서 종이봉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리고, 멀리 트럭 시동 소리가 낮게 깔립니다. 일상은 늘 분주하지만, 오늘 비가 만든 이 오전의 여백 속에서, 분홍 우체통은 묵묵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꼭 무언가를 넣지 않아도, 이 자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 같습니다. 닫힌 입구가 아니라, 열려 있는 침묵처럼 보입니다.
우산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우체통 옆 작은 웅덩이에 동심원을 그립니다. 겹겹의 원이 퍼져 나가다 어느 순간 잦아들고, 사라진 흔적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도, 생각도, 기도도 누군가의 품으로 가 닿을 때까지 이처럼 번져 나간다는 것을요. 모두가 조용히 제 갈 길을 가는 시장의 오전에, 마음의 받는 이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잠시 더 서 있다가, 우산을 접으며 숨을 길게 내어봅니다. 비와 숨이 섞여 옅은 김이 되고, 그 김이 차가운 공기에서 금세 사라집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넓은 곳으로 옮겨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체통 안쪽에서 울린 작은 소리가, 마음 안에서도 은은히 계속 울리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