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26일 07시 01분 발행
저녁 현관 앞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테이프를 벗길 때 나는 얇은 찢김 소리와, 접착제에서 올라오는 은근한 냄새가 하루의 끝에 스며듭니다. 모서리가 살짝 눌린 자국을 보며, 저도 오늘 그런 모서리를 몇 번이나 가지고 있었는지 떠올리게 됩니다. 다치지 않았지만 조금 눌리고, 어지럽지 않았지만 살짝 흔들린 마음들 말입니다.
하루 내내 화면 속에서 한 점이 이동했습니다. ‘집하’에서 ‘이동’으로, 다시 ‘배달 중’으로. 정오 무렵엔 같은 도시 안에, 오후에는 동네 입구까지. 숫자 몇 개와 문자 몇 줄이 제 기다림을 방의 공기처럼 채웠습니다. 기다림이 길다고 해서 늘 불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런 순간에 깨닫곤 합니다. 경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때론 위로가 되니까요.
상자 안에는 크게 자랑할 것 없는 생활용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완충재가 사각거리며 옆으로 밀리고, 주문 목록과 영수증이 얌전히 따라 나옵니다.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내일의 작업대를 세워 줍니다. 삶이라는 책상도, 이렇게 소소한 것들로 수평을 유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맞는 연필심, 마르는 데 시간이 덜 걸리는 수건,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컵 하나 같은 것들로요.
송장에 적힌 제 이름을 한 번 천천히 읽어 봅니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주소가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가끔은 마음의 송장이 흐릿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무엇을 싣고 있는지, 이제 어디로 향하는지 잠시 잊게 되는 날들 말입니다. 그럴 때 이름 석 자가 명확히 인쇄된 라벨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방향이 잡힙니다. ‘나는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용히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부르심을 듣는 순간, 마음은 모양을 되찾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알고, 그 이름으로 건네는 초대가 있다는 사실은,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완충재처럼 내면의 빈틈을 부드럽게 지켜 줍니다. 무게가 같은데도 덜 흔들리는 마음, 그게 참 신기합니다.
상자 옆면에 붙은 작은 스티커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파손주의’, ‘비에 젖지 않게’. 이런 표시를 마음에도 붙이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조심히 다뤄 달라는 뜻을 말로 다 전할 수 없을 때, 이 작은 그림들이 대신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고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쩍 갈라지고 금이 가는지를 이미 아시겠지요. 그래서인지 인생의 경로 곳곳에 보이지 않는 포장이 덧대어질 때가 있습니다. 미뤄진 일정이 슬그머니 시간을 벌어 주고, 예기치 않은 기다림이 뜻밖의 숨을 건네는 순간처럼요.
알림창에는 ‘배송완료’라는 초록 글자가 떠 있지만, 우리 하루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습니다. 상자를 열고, 포장을 모아 접고, 내용을 제자리로 옮기는 사이에도 마음은 계속 도착 중입니다. 급하게 버리기엔 아직 손에 온도가 남아 있고, 종이에서 흘러나온 가느다란 먼지들이 조용히 빛을 타며 내려앉습니다. 이 작은 의식이, 오늘을 정리하는 또 하나의 문장이 되는 듯합니다.
빈 상자를 접어 끈으로 묶으니, 모서리마다 얇은 선이 살아납니다. 하루 동안 내 안에서 접히고 펴졌던 생각들도 이런 선을 가지고 있었겠지요. 무엇이 부서지고 무엇이 보존되었는지, 어느 부분이 더 단단해졌는지 손끝으로 짚어 보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송장만은 떼지 않고, 잠시 더 바라봅니다. 이름을 적어 둔다는 것, 그 이름이 찾아와 닿는다는 것은 얼마나 잔잔한 용기인지요.
문을 닫고 들어와 방의 불을 낮추니, 상자 모서리에 남은 빛이 한 줄 머뭅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출발해 이곳까지 와 준 것들이 있었습니다. 마음도 그중 하나였을까요. 내 이름을 기억하는 분이 계시다는 생각을 품으니, 아직 열어 보지 않은 작은 포장 하나가 밤의 고요 속에서 조용히 숨을 고릅니다. 도착했다는 표시가 켜진 자리에서, 다음 도착을 기다리는 온기가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