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구두방의 느린 바늘

📅 2025년 08월 27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안쪽 좁은 복도를 따라 들어가면 오래된 구두방 하나가 있습니다. 유리문 위에 달린 자그마한 종이 들었다 놨다 울리고, 방 안에는 가죽과 약품이 섞인 냄새가 잔잔하게 깔려 있습니다. 벽시계는 소리치지 않지만 꾸준히 초를 밀어 보내고, 낡은 스툴 하나가 드르륵 몸을 움직입니다. 구두 수선공은 둥근 돋보기를 이마에 걸치고, 햇볕 대신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바늘과 실을 준비합니다. 작업대에 흩어진 검은 가루들은 하루 동안 깎여나간 길의 부스러기처럼 보입니다.

굽이 닳아 바닥을 거의 스칠 만큼 얇아진 구두를 맡기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보면, 저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 보게 됩니다. 말수는 적은데 손이 모든 말을 대신하는 사람. 그는 먼저 밑창의 모양을 천천히 훑습니다. 안쪽이 더 많이 닳은 사람도 있고, 오른쪽 바깥으로 살짝 기운 사람도 있습니다. 구두는 주인을 닮아 가고, 닳아감은 어디를 오래 서 있었고 무엇을 지나왔는지 조용히 증언합니다. 표면은 윤이 나도, 바닥은 늘 바닥으로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묻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할 때가 있지요. 겉으로는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마음의 밑면에서만 들리는 소리를 혼자 듣고 있는 시간들.

수선공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실의 길이를 재고, 손바닥에 왁스를 문지른 뒤 바늘귀를 통과시킵니다. 두툼한 가죽에 송곳이 뚫어 놓은 작은 길을 따라 실이 지나가면,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음이 속에서 단단해집니다. 눈에 띄지 않게 숨은 박음질이 오히려 오래 버틴다고, 그는 가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관계도 그렇게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큰 약속이나 화려한 말보다, 알리지 않고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 돌아서며 슬쩍 비워 놓은 자리, 늦은 밤 “잘 들어갔냐”는 짧은 안부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밑창이 되어 줍니다. 밖에서는 티가 나지 않지만, 실제 걸음을 지탱하는 것은 대개 그쪽입니다.

어릴 적 겨울밤, 어머니는 온기가 가시지 않은 방바닥에 앉아 양말을 뒤집어 발꿈치를 기워 주시곤 했습니다. 깡통에 담긴 바늘상자에서 매끈한 바늘 하나를 꺼내, 작은 원을 그리듯 오래오래 같은 곳을 거듭 지나가셨지요. 바깥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둥근 달무늬가 양말 안쪽에 생겼고, 아침에 그 양말을 신으면 발꿈치에만 조용한 포근함이 몰려왔습니다. 사랑이란 대체로 그런 방식으로 제자리를 찾는 모양입니다. 드러나지 않는 곳을 먼저 떠받쳐 주는 일, 그곳에서부터 다시 따뜻함이 번져 오는 일.

구두방의 공기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 고요했지만, 그의 손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실이 한 땀 들어갈 때마다 짧은 한숨 같기도, 짧은 기도 같기도 한 숨이 그의 입술로 흘렀습니다. “그는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3). 오래된 라디오에서 흐르는 희미한 음악과 섞여, 그 문장이 방 안을 한 바퀴 돌아 나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모든 상처가 한 번에 낫지는 않지만, 어쩌면 낡은 밑창과 마음의 금 사이에는 비슷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틈이 생겨야 실이 들어가고, 결이 드러나야 손이 제 길을 압니다. 금이 곧 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오히려 그곳에서 이어짐이 시작된다는 고요한 확신이 가끔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공임을 치르고 다시 구두를 받아 들었을 때, 손바닥 너머로 단단함이 전해졌습니다. 약간 높아진 굽이 바닥을 누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새 고무에서 나는 미세한 향이 다음 걸음을 약속하는 듯했습니다. 문을 나서며 한 걸음을 떼는 순간, 바닥과 닿는 소리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더 크게 울리지도, 과장되게 울리지도 않는, 다만 단정하고 부드러운 소리. 세상은 여전히 분주했지만, 내 발끝은 아주 조금 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음에도 얇은 덧창 하나가 깔린 듯, 같은 길이 다른 감촉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발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선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손길, 오래된 문장 하나, 잊지 않고 건네는 눈짓 같은 것들이, 말없이 우리를 붙들어 주고 이울어 가던 자리들을 이어 줍니다. 그 작은 바늘의 왕복 소리가 들리는 순간, 마음은 다시 천천히 걸음을 맞추고, 한 사람과 또 한 사람 사이에 부드러운 길 하나가 생깁니다. 그 길 위에서 하루는 조금 덜 닳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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