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28일 07시 01분 발행
오늘은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창구 앞 의자에 앉아 대기표를 쥐고 있으니, 전광판의 숫자가 한 칸씩 넘어갑니다. 짧은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갑니다. 손에 든 봉투는 얇고 가벼운데,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누구에게나 제각각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듯했습니다.
옆자리에서는 연세 지긋한 분이 영수증을 길게 접어 지갑에 넣으시고, 반대편에는 어린아이가 스티커 붙인 엽서를 들고 엄마 손을 잡고 서 있습니다. 창구 너머에서 직원의 도장이 종이 위에 눌릴 때마다, 잉크가 종이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이 잠깐 보였습니다. 테이프를 끌어당기는 소리, 상자 모서리를 깔끔히 맞추는 손길, 유리 칸막이 너머로 건네지는 짧은 눈인사까지. 기다림은 느리지만, 이 느림 덕에 작고 다정한 장면들이 또렷해졌습니다.
제 순서가 오기까지, 저는 몇 번이나 손에 든 번호표를 펼쳤다 접었습니다. 숫자는 냉정했습니다. 앞사람이 수십 명이든, 한 사람만 남았든, 숫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얼굴은 숫자와 달랐습니다. 오늘 부치는 소식이 이별의 인사인지, 생일 축하인지, 혹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지,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알 듯 말 듯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기도도 가끔 대기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올려 보낸 마음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순간들, 응답의 전광판만 바라보다 숨이 가빠질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목소리를 가다듬어 제 이름을 불러 주던 어떤 옛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름은 대체로 숫자보다 오래 남습니다. 숫자는 차례를 정하지만, 이름은 존재를 부릅니다. 성경은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신다고 말하지요(요 10:3). 전광판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 이동하는 우리와 달리, 주님은 이름을 불러 얼굴을 보시고 걸음을 맞추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구에 서자 직원이 제 봉투를 받으며 어디까지 가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작은 도시의 주소를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가 쳐다본 것은 우편번호였지만, 제 머릿속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웃음과 습관, 좋아하는 색 같은 사소한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운송장에 적히지 않는 것들, 그러나 우리가 보낼 때 가장 크게 담아 넣는 것들 말입니다.
창구를 나와 문을 밀고 나오는데, 주머니 안 대기표가 아직 따뜻했습니다. 종이 한 장도 금세 온기를 옮겨 담습니다. 오늘 제 가슴에 남은 온기도 그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번호가 불리면 일어나 가는 이 곳에서,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조용한 확신 하나. 아직 배송 중인 소식들이 있는 삶이지만, 그 길 위에 멈칫멈칫 서 있는 제 걸음에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물러 있음을 아는 안도감 하나. 때로는 이런 작은 온기들이 하루의 방향을 바꾸는 지도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 봉투의 가벼운 무게만큼 제 마음에도 작은 자리가 생겼습니다. 금세 사라질 듯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자취가 있는 법이지요. 오늘 불린 것은 숫자였지만, 기억된 것은 이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