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방에서 배우는 온기

📅 2025년 08월 29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저녁, 동네 빨래방에 조용한 진동이 깔립니다. 둥근 드럼이 돌 때마다 낮은 울림이 바닥의 체크무늬 타일까지 전해지고, 세제 냄새가 미세한 안개처럼 매달립니다. 플라스틱 의자는 약간 차갑고, 벽에는 사용법이 적힌 오래된 안내문이 테이프 자국과 함께 붙어 있습니다. 동전을 집어넣을 때 나는 금속성 소리, 유리문에 드문드문 맺히는 김, 천천히 차오르는 물의 반짝임. 그 한가운데 앉아 있으면, 하루의 속도와는 다른 시간이 이곳에서만 따로 흐르는 듯합니다.

바구니 속에는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함께 와 있습니다. 얼룩이 박힌 앞치마, 이름표가 반쯤 떨어진 체육복, 모서리가 닳아 부드러워진 수건. 한 주 동안 몸에 닿았던 모든 감정이 천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어 모여 있는 듯합니다. 뽀얗게 만들려는 마음도 있고, 그냥 지금의 냄새를 덮어줄 정도면 좋겠다는 마음도 함께 있지요. 삶은 가끔 이런 바구니 같습니다. 분류하려 애쓰다가도 어느 순간, 있는 그대로 드럼에 넣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물이 차오르자 천들이 서로 기대고 떨어지고 다시 끌려갑니다. 어떤 순간엔 거칠게 흔들리고, 또 어떤 순간엔 한 박자씩 길게 고요해집니다. 그 모습을 오래 보고 있으면, 내 안의 무언가도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손댈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안심이 됩니다. 기다림이 하는 일, 맡김이 만들어내는 일, 그 사이의 침묵이 정리해 주는 일들이 눈앞에서 작게 반복됩니다.

한쪽 구석에는 짝을 잃은 양말들이 모여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무늬와 길이, 색의 톤도 어지럽습니다. 잃어버린 대화, 끝내 맞춰지지 못한 마음, 기약 없이 놓아두어야 했던 계획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바구니로 돌아가 따뜻해진 빨래를 차곡차곡 접어 가방에 넣습니다. 완벽하게 짝맞지 않아도 일상은 다시 시작되고, 그 미완 사이로도 온기는 스며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헝클어진 끝을 갑자기 매끈하게 고치지 않으셔도, 묶어둘 수 있는 만큼을 살며시 묶어 주시고, 손에 쥘 수 있는 평안을 남겨 주시는 때가 있지요.

건조기 문을 열면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스칩니다. 수건을 꺼내는 손끝에서 가끔 작은 정전기가 톡 하고 지나갑니다. 아직 비누 향이 엷게 남아 있고, 섬유 사이엔 새로운 숨이 들어가 있습니다. ‘깨끗함’이란 아마도 하얗게 지워진 흔적만을 뜻하진 않을 겁니다. 다시 몸을 감싸주기에 충분한 온기, 하루의 먼지를 닦아내기에 모자람 없는 부드러움, 그 정도면 족하다고 말해 주는 표정. 용서는 어쩌면 이런 온도에 가깝습니다.

잠깐 린트 필터를 빼내어 쌓인 보풀을 모읍니다. 하루 동안 우리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다니던 미세한 찌꺼기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있습니다. 굳이 말하지 못했던 한숨, 지나치게 예민했던 순간, 마음속에 남은 언짢음이 얇은 회색 뭉치가 되어 떨어져 나갑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 구절은 큰 소리로 울리지 않아도 충분합니다. 오늘의 보풀을 조용히 털어 내도 괜찮다는 약속처럼 들립니다.

벽시계 초침 소리와 드럼의 둔탁한 리듬이 한동안 겹칩니다. 이 리듬에 맞춰 앉아 있자니, 서두르지 않는 변화라는 것이 얼마나 깊은 힘을 지니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누구의 마음도 버튼 몇 번으로 즉시 말라지지 않겠지요. 그래도 제각각의 속도로 돌고, 데워지고, 접히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같은 옷감이지만 손에 쥐는 감촉이 달라집니다.

접는 테이블 위에 수건을 올려 차곡차곡 모서리를 맞춥니다. 가운데에는 작은 손수건 하나가 남습니다. 이 작은 천으로 누군가는 식은 이마를 닦고, 늘어진 하루의 표정을 쓸어내리고, 아이의 손에 묻은 과즙을 살짝 닦아 줄 겁니다. 믿음이란 거창한 깃발보다 이런 작은 면적의 부드러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낮은 말투와 천천한 눈맞춤, 오늘의 피곤과 내일의 소망이 같은 바구니 안에서 조용히 닿습니다.

불이 한 칸씩 줄어드는 공간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면 손에는 남은 동전 서너 개와 따뜻한 빨래의 무게가 있습니다. 깨끗해진 천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배어 나온 온기를 함께 들고 나오는 느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무언가를 완벽히 지워 주시기보다, 다시 살아낼 만큼의 온도를 건네 주시는 분이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머니에 넣은 작은 손수건의 온기가 오래 식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밤입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