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30일 07시 01분 발행
예배당 옆 작은 음악실에 문을 열면, 나무와 펠트의 냄새가 먼저 반겨줍니다. 오늘은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의 등판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좁은 틈 사이로 금빛 현들이 촘촘히 누워 있고, 조율사의 조용한 숨이 그 사이를 오갑니다. 긴 렌치가 핀을 조금씩 돌릴 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마치 누구의 마음속에서도 작은 나사 하나가 조심스레 풀렸다 조여지는 소리가 나는 듯합니다.
조율사는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동그란 귀를 가진 작은 음차를 살짝 두드려 기준음을 들려준 뒤, 귀에 익은 그 한 음으로 다른 음들을 천천히 불러냅니다. 어긋난 음은 금세 눈치채지만, 바로 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급히 당기면 금속이 버티지 못하고, 너무 느슨하게 놓으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는 알맞은 긴장과 온기를 기다립니다. 손끝과 귀 사이로 오고 가는 신호가 음악실의 공기를 부드럽게 데웁니다.
하루의 마음도 이와 비슷한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덧쌓인 말과 표정, 미뤄둔 일과 뜻밖의 소식들이 뒤섞여, 안쪽 어딘가가 미세하게 어긋난 느낌이 남을 때가 있습니다. 악보를 펼치면 음표가 줄지어 있는데, 건반을 누르면 어쩐지 낯선 소리가 나는 그런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곡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음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을 이끌 한 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다시 불러주는 음입니다.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다스린다는 한 구절이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그 말이 오래된 방석처럼 포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기 전에, 그 평강이 부드럽게 자리 잡으면, 불협화음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튀어 올라와도 전부를 덮지 않고, 내 속의 서운함도 지나치게 부풀지 않습니다. 평강은 소리를 지르지 않지만, 묵묵히 방향을 잡아줍니다.
조율사는 한 번에 모든 건반을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한 옥타브를 다듬고, 또 하나를 건너, 때로는 같은 음을 여러 번 확인합니다. 완벽보다 지속이 더 음악에 가깝다는 걸 그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하루도 그렇습니다. 오늘 고쳐지는 건 전부가 아니어도 충분합니다. 서랍 속 구겨진 영수증을 펴서 버리는 작은 정리,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눈으로 따라가는 짧은 쉼,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고리를 살짝 느슨하게 만드는 한마디의 안부. 그런 순간들이 기준음을 들려줍니다.
피아노가 조용히 덮개를 닫을 때쯤, 방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돈이 남습니다. 누군가 와서 자리를 바꾼 것도 아닌데, 의자와 악보, 공기까지 가지런해진 느낌이 듭니다. 오늘의 끝자락 어딘가에도 그런 미세한 정돈이 깃들 수 있겠습니다. 크지 않은 한 음이, 묵직한 침묵과 어울려 맑게 울리는 밤. 그 음이 우리를 묶어두던 매듭을 조금 느슨하게 하고, 내일 만날 사람의 목소리를 어제보다 조금 더 명확히 듣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울리는 소리는 대개 작은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만, 이 늦은 오후의 피아노처럼 고요히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