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저울 위에 올려놓는 것들

📅 2025년 09월 03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우체국은 아침이 조용합니다. 반쯤 올린 셔터 틈으로 빛이 들어오고, 유리문 위의 종이 얇게 흔들립니다. 카운터 앞, 손바닥만 한 저울 위에 봉투가 올라가면 빨간 바늘이 잠깐 흔들린 뒤 제 자리를 찾습니다. 창구 직원의 목소리가 낮게 머뭅니다. “38그램이네요.” 우표가 건네지고, 촉촉한 스펀지를 지나 봉투 모서리가 단단해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서두르지 않습니다. 무게가 정해지면 길이 열리듯, 봉투는 제 값을 치르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저울을 보다가 마음이 걸립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속으로 달아 보았을까요. 미루어 둔 말, 다시 꺼내기 어려운 이름, 한 번 더 웃어주지 못한 순간. 사과라는 두 글자는 가벼워 보이는데, 그 두 글자를 내놓기까지의 시간이 종종 가장 무겁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종잇장처럼 얇지만, 문턱을 넘지 못할 때는 작은 돌처럼 주머니 속에서 오래 부딪힙니다.

우체국에는 봉투마다 행선지가 적히지만, 우리 품의 침묵에는 목적지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무 데도 가지 못한 마음이 속에서만 제자리를 맴돌 때가 있습니다. 겨울 코트 주머니에 쌓인 모래처럼, 한참 뒤에야 손끝에 걸려 나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울은 그런 무게를 읽어주지 않습니다.

오늘 창구에서 한 어르신이 옅은 미소로 사진 한 장을 봉투에 넣어 붙입니다. 멀리 있는 딸에게 보낸다고 했습니다. 사진의 모서리를 몇 번이고 손끝으로 곧게 펴는 모습이 기도처럼 보였습니다. 우표 위에 찍히는 붉은 날짜가 도장을 내리칩니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봉투를 투입구에 밀어 넣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 놓아보내는 일에는 늘 작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경 한 구절이 마음을 스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맡긴다는 말이 간단해 보여도, 손을 떼는 일에는 시간이 듭니다. 우리는 종종 다시 저울 위로 올려 놓고, 다시 무게를 재어보곤 합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듯, 주님 쪽 창구는 닫히지 않습니다. 계산이 복잡해져도 수수료가 더해지지 않는 창구. 말이 정리가 안 된 날에도, 표정이 흐트러진 오후에도, 그곳의 손길은 같은 온도로 뻗어 있습니다.

문득 작은 봉투 하나가 떠오릅니다. 종이 한 장에 사과 한 줄, 안부 한 줄, 스스로에게 보내는 용서 한 줄을 적어 넣는 모습. 그 봉투는 우체통으로 향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다. 서랍 안에, 책갈피 사이에, 침대 머리맡 스탠드 아래에 잠시 눕혀 두어도 좋겠습니다. 적는 동안 문자열이 정리되고, 정리되는 동안 무게가 조금 달라지곤 하니까요. 말을 쓰는 손의 속도만큼 마음도 한 걸음 거리를 찾습니다.

창구 뒤편에서 ‘탁’ 하고 날짜 도장이 찍힐 때마다, 오늘이 오늘답게 인정받는 느낌이 납니다. 우리 일상에도 그런 도장이 찍힐 순간들이 있습니다. 된장을 푼 냄비가 보글거릴 때, 오래된 머그컵에 물을 채울 때, 빨래를 반 접어 서랍에 넣을 때. 작고 자꾸 반복되는 동작이 하루를 유효하게 만들고, 그날의 사소한 무게를 감당 가능한 크기로 덜어 줍니다.

문을 열고 나오니 도로 위 노란 선이 햇빛에 또렷합니다. 지나가는 차들의 그림자가 길게 누워 있다가 일어섭니다. 손에 남은 우표의 끈적임이 오래 가듯, 마음에도 방금의 장면이 천천히 붙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봉투에 넣어, 믿을 만한 손에 건네줄 수 있겠지요. 오늘의 무게가 어디론가 향할 수 있도록, 그 길 어귀에 누군가 따뜻한 창구로 서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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