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포 아래의 시간

📅 2025년 09월 08일 07시 01분 발행

아직 골목 불이 다 켜지지 않은 새벽, 동네 빵집 문이 반쯤 열려 있습니다. 안쪽에서 따뜻한 김이 슬쩍 흘러나오고, 반죽을 접는 둔탁한 소리와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겹쳐 들립니다. 제빵사는 두 손으로 반죽의 가장자리를 모아 접어 올리고, 둥글게 모양을 잡은 뒤 하얀 면포를 살짝 덮습니다. 한 번 더 손바닥으로 다독이듯 쓸어 주고는 조용히 물러섭니다. 움직임이 멈춘 그 순간부터 비로소 일이 시작되는 듯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누룩이 제 할 일을 하고, 나무 작업대 위로 퍼진 미세한 온기가 반죽의 숨을 돋웁니다.

가게 구석의 온도계가 아주 조금씩 올라갑니다. 바닥에 흩어진 밀가루 가루가 별가루처럼 반짝이고, 환풍기의 낮은 숨 소리가 어둠의 가장자리를 흔듭니다. 이른 새벽의 빵집은 분주함의 집이면서도, 그 심장부는 기다림의 방처럼 고요합니다. 굽는 시간보다 더 길고, 손기술보다 더 깊은 시간은 늘 이 면포 아래에서 흐르는 듯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도 면포 하나가 필요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말로 다 섞이지 않는 하루의 찌꺼기, 오래 씹어도 풀리지 않는 마음의 덩어리들이 있습니다. 급히 구워 바삭한 표정만 내놓으면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아직 덜 익은 채로 남습니다. 반죽이 자기 온도를 찾을 때까지 쉬듯, 마음에게도 쉬어 머무는 온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누가 대신 끌어올릴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선한 기운 말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누룩에 비유하셨지요.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마태복음 13:33). 눈에 잘 보이지 않는데도, 그 작은 것이 전체의 숨결을 바꾸어 놓습니다. 믿음도, 위로도, 사랑도 종종 그렇게 일어납니다. 크게 외치지 않고, 성급히 증명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안쪽을 변화시킵니다.

제빵사는 발효의 시간을 어기지 않습니다. 가끔 면포를 살짝 들어 반죽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다시 덮어 줍니다. 믿음의 길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가 말을 멈춘 뒤에 남겨지는 시간, 관계가 설명을 그만두고 서로의 온기를 기억하려 애쓰는 시간, 아침을 준비하는 어둠처럼 아직 밝지 않지만 이미 빛의 방향으로 기울어 있는 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보태지 않아도 진행되는 일이 있으며, 내가 앞서지 않아도 깊어지는 일이 있음을요.

가게 앞 하늘이 조금씩 밝아질 때쯤, 반죽은 조용히 몸을 키워 있습니다. 나중에 오븐 문이 열리고 고소한 냄새가 골목을 채울 때 사람들은 비로소 이 아침을 알아차리겠지요. 그러나 제빵사는 압니다. 가장 큰 일은 향기가 나기 전, 면포 아래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요.

오늘 우리의 속에서도 그런 발효가 일어나고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걱정의 언저리를 덮어 주는 한 겹의 온기, 서두르지 않는 신뢰, 보이지 않아도 틈새를 채워 주는 작은 누룩 같은 은혜. 아직 결과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조용히 부풀어 오르는 힘이 언젠가 우리의 식탁을 차려 줄 테니까요. 각자의 골목에도, 그런 따뜻한 냄새가 천천히 번져 가는 하루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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